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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1월 14일] <1550>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같은(as like as Leibniz)'. 활용 빈도가 낮지만 특급천재라는 의미를 지닌 관용구다. 잘 쓰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와 필적할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뛰어났기에 그럴까. 이진법 산술체계를 개발해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문명의 기초를 닦고 미분법을 발견했다는 사실조차 극히 일부의 업적일 뿐이다. 수학자이며 철학자ㆍ신학자ㆍ법률학자ㆍ물리학자인 동시에 정치인ㆍ외교관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는 물론 심지어 한자의 독해까지 가능했다는 그를 두고 후대의 '학문 군주' 프리드리히 대제는 이런 평가를 내렸다. '대학 그 자체'. 1646년 라이프치히에서 도덕철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0세에 법학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했으나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학위 수여가 거절된 뒤 교수직을 포기하고 세상에 나왔다. 마인츠 공국의 대법원 고문관을 지내며 파리 주재 외교관으로 일하면서도 계산기를 발명해냈다. 외교관으로서 그의 업적은 영국 하노버 왕가의 출범. 대가 끊긴 영국의 국왕 자리를 마인츠 공국이 잇도록 힘을 보탰다. 적도 많았다. 미분법을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를 둘러싼 뉴턴과의 공방전은 수학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논쟁으로 꼽힌다. 시간이 흐른 뒤 둘 다 독자적으로 미분법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표절 의혹은 사망(1716년 11월14일ㆍ70세)할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말년에 인간 개체의 본질을 설명한 '모나드(Monard)론'을 남긴 그는 최근 재조명 받고 있다. 이진법 개념을 주역에서 따올 만큼 동양의 학문을 높이 평가했던 라이프니츠야말로 동서양의 조화와 융합을 위한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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