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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업 새한 사장
입력2003-12-02 00:00:00
수정
2003.12.02 00:00:00
김형기 기자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이 최근 몇 년간 고민하는 가장 큰 화두는 `중국`이다. 특히 섬유나 의류업종에 종사하는 기업에게 중국변수는 생존과 직결돼 있다. 중국이 연초의 사스(SARSㆍ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파동에서 벗어나 다시 성장탄력을 받기 시작한 하반기들어 기업들의 이 같은 고민은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000년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새한(옛 제일합섬) 역시 중국을 화두삼아 벌써 3년째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경영실적이 당초 기대했던 것 보다 낮게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대규모 화섬업체들이 생겨나면서 주요 원료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다 보니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박광업(52) 새한 사장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중국 이야기를 꺼내면서 화섬업체의 한계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새한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업종의 경기사이클이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 규모의 확대가 핵심요소라는 이야기다. 현재와 같은 사업구조로는 경영을 지속적으로 안정시키기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새한은 워크아웃 3년의 노력 끝에 올해 나름대로 상당한 경영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한 3분기 누계 매출액은 5,461억원. 이 기간동안 영업이익도 178억원을 올렸으며 무엇보다도 71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회사가 순이익을 올린 것은 지난 1999년이후 5년만이다.
무수익 자산을 처분해 차입금을 축소시켜 이자부담이 줄였고, 워크아웃으로까지 몰고 간 원인인 적자사업을 적극적으로 정리한 것이 주효했다. 박사장은 하지만 지금부터의 경영이 보다 중요하다고 믿고있다. 자칫 그저그런 회사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잔뜩 배어있다.
“앞으로 한국의 섬유업체들은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에 따라 사활이 좌우될 것입니다. 어쩌면 섬유뿐 아니라 한국기업 전체의 운명이라고도 보여집니다. 올해부터 새한은 중국을 경쟁상대로 바라보기 보다 명실상부한 협력 파트너로 취급하기로 했습니다.”
새한이 중국을 협력 파트너로 받아들이면서 시작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생산 및 판매기지 구축이다. 지난 7월엔 상하이에 중국 총괄법인을 설립했다.
“외환위기이후 줄곧 위기가 이어졌지만 우리 회사는 대구에 기반을 둔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범용제품은 도저히 경합이 되지 않더군요. 결국 어느 정도는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판단아래 중국에 공장도 만들고 본부도 마련했습니다.”
박 사장은 다만 중국에 진출하더라도 새한만의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보겠다는 자존심을 갖고있다.
“중국에 진출한다는 방향을 잡아놓은 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나 무척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새한만이 갖고있는 노하우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박 사장이 설명하는 새한만의 노하우는 섬유생산 노하우뿐 아니라 유통, 디자인 및 상품 브랜드 관리력이 모두 포함된 개념. 한마디로 섬유ㆍ의류 원자재가 투입돼 중간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판매하기까지 이어지는 각 단계마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경영하겠다는 의미다.
최근 새한이 기대하고 있는 가장 유망한 품목은 비섬유부문. 환경소재용 필터와 산업용 및 건축용으로도 응용이 가능한 시트 등이다.
“식품 보관용기로 활용되는 시트는 전체 생산량의 70%를 일본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시트가 원적외선을 방출해 환경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내수시장 수요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시트가 벌써 새한의 효자품목으로 떠올랐다면 필터는 중국시장에 승부를 걸고있는 히든카드다. 중국을 드나들다보니 그곳은 정수용 필터수요가 무궁하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 박사장은 중장기적으론 플랜트규모 이하의 수질정화용 필터까지 생산해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우리보다 섬유산업을 먼저 시작했던 나라들을 살펴보면 산업용(비의류용)과 의류용의 비중이 7대3으로 뒤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섬유산업 구조 역시 이 같은 비율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새한의 생존방식 역시 이 방향에 맞춰져있다고 말하는 박 사장은 단기적으론 워크아웃 졸업이 목표지만 중장기적으론 다시 한번 제일합섬 시절과 같은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는 것이라며 말을 맺었다.
▲경영철학과 스타일
박사장은 학교졸업과 동시에 ㈜새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 올초 있었던 CEO공개채용을 통해 최고경영자가 됐다. 새한의 기업역사와 운명을 함께한 셈이다.
그는 CEO론 드물게 형식파괴를 매우 좋아한다. `격의없다`는 수준을 넘어서 상대방을 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다. 새한 임직원들 사이에선 `고객 미팅룸이 꽉 찼다면 사장실을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고객 최우선이라는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달한 것이 `사장실 사용 무제한`이란 결론이다.
지난 7월 상하이 총괄본부 개설기념식을 위해 중국으로 방문했을 때도 박사장의 파격적인 행보가 현지 임직원들의 화제로 올랐었다.
“행사일 직전 저녁에 국내에서 파견한 임직원들이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다른 약속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왜냐고 묻길래 `당신들뿐 아니고 현지채용인도 새한의 식구다`라며 `그들하고 저녁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모두가 함께 저녁자리를 같이했는데 현지채용인들이 너무 좋아하더군요.”
그날 박사장은 현지채용인들이 건네주는 `고량주 폭탄주`때문에 만취가 됐다.
박 사장은 또 `스피드`를 한껏 강조한다.
지식정보사회에선 경영도 정보화해야 하며,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때문에 새한은 시간낭비가 심한 회의를 가급적 자제한다. 박사장 역시 업무 보고를 받지 않고 있으며, 서류 결재는 절대 하지 않는다.
<김형기기자 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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