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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ㆍ시화공단 르포] 기계멈춘 공장 매물속출 ‘황량’

“공단 내 업체들 상당수가 적자가 나는데도 근근히 꾸려가는 형편으로, 하이테크 업체마저 중국 등으로 생산라인 이전을 검토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치권과 노조는 정쟁이나 투쟁만 일삼고 있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려는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거센 찬 바람이 휘몰아치던 지난달 28일 국내의 대표적 공단으로 꼽히는 반월ㆍ시화공단(지난 8월 기준 3,222개사 입주)을 찾은 기자에게 ㈜케이피엠테크 채창근 대표는 작심했다는 듯이 울분을 토해냈다. 안산상공회의소에 먼저 들러 공단에 관한 개황을 들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희는 대기업 등에 표면처리 자동화 시설과 재료를 납품하는 하이테크쪽인데 아무리 팔아도 이익이 (별로) 없으니 답답합니다. 부동산 열풍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38년 외길을 걸으며 연구소에 대한 투자도 적지 않게 했는데 이제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이어 “중국 내 현지 성장(省長)이나 시장(市長)이 한달에 3~4차례 공단을 찾아 투자유치에 나서는데 우리 공무원들과 정치권은 뭐하고 있으며, 노조의 동투(冬鬪)는 또 뭐냐”며 “우리는 있는 기업마저 내쫓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기자는 공단의 한 기업인으로부터 “중국 정부로부터 투자유치에 협조해달라며 수백만원의 금일봉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중국이 얼마나 공세적으로 외자 유치에 나서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공단에서 우량업체로 꼽히고 있는 ㈜파세코를 찾았을 때도 제조업계의 어려운 현실은 예외가 아니었다. 대기업에 김치냉장고ㆍ식기세척기 등을 납품하고 해외에 석유난로를 수출하고 있는 이 회사는 널찍한 공장에 직원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마당에는 트럭들이 물건을 싣고 있고, 연구소(60명 근무)도 나름대로 활기가 느껴졌다.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은 유병진 회장은 그러나 뜻밖에도 심각한 고민을 털어놨다. “수출로 벌어 (부진한) 내수를 만회하고 있는데 마진이 (별로) 없어 애로가 큽니다. 수출 4,000만달러에 매출이 1,200억~1,300억원이 되는데 내수는 위축되고 자체브랜드가 취약해 제값 받기가 어렵습니다. 직원 모집도 애로가 있고요. 수출도 원가는 오르는데 환율절상으로 녹록치 않은 형편입니다. 내년에는 내수는 조금 나아질 것으로 봅니다만 수출의 경우 1달러당 1,100원은 가야 그나마 유지가 되는데 1,050원선으로 떨어지면 답이 없어 걱정입니다.” 이와 관련, 반월ㆍ시화공단은 올들어 지난 8월까지 작년 동기보다 생산액(12조8,316억원)은 11% 감소한 반면 수출(35억2,800만달러)은 5.2% 증가했다. 유 회장은 “내년부터는 노동집약적 품목부터 중국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며 “개성공단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좋겠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씁쓸해 했다. 내수는 부진하지만 사상 최대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는 자동차 관련 부품업체인 I사를 찾았을 때는 노동자들이 생산라인을 재배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회사 대표는 “올해 매출은 자동차 수출증가로 작년보다 10%이상 늘어난 1,000억원 정도가 예상되나 오히려 마진은 더 줄어들고 있다”며 “라인 재배치나 아웃소싱 확대 등 원가절감, 아이템 개발, 중국에 임대공장 마련 등 활로를 모색중”이라고 말했다. CEO(최고경영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공단을 둘러보니 이곳 저곳에`공장전문`이라는 부동산이 꽤 눈에 띄었고, 중고 기계를 싸게 사서 되파는 업체도 바쁜 손길을 놀리고 있었다. 안산상의 주최의 `중국진출 실패사례와 효과적 진출방안`세미나에 관한 플래카드도 쓸쓸히 나부꼈다. 이 모두 제조업 공동화 추세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공이공이 부동산의 오길주 대표는 “제조업 환경이 악화되면서 매물이나 임대로 나온 공장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상당히 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물이 쌓인 이유에 대해 경쟁력 저하에 따라 중국ㆍ베트남 등 해외나 지방으로 나가거나, 피혁이나 섬유업체 등 사업을 접는 경우가 늘고, 기계업체 등의 소사장제 확산 등을 꼽았다. 실제 공단내 S컴퓨터의 경우 멕시코나 중국 등 해외 비중을 늘리며 2공장은 임대로 돌리고 있었다. 피혁업체 등 경쟁력을 상실한 업종은 이미 80~90%는 없어진 상태였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중고기계 매매알선사이트(www.findmachine.or.kr)에도 지난달 31일 현재 눈물을 머금고 싸게라도 매각하겠다는 물량이 2,282건이나 됐으나, 사겠다는 경우는 241건에 지나지 않았다. 아울러 공단내 기업들의 정규직 채용에 대한 애로를 반영하듯 `인력 용역회사`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합법화 신고를 하러 가는 불법체류자 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 관계자는 “영세 3D업종은 외국인 없이는 굴러가지 않을 정도”라며, 이달 말 합법화 신고기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불법체류자로 남을 12만여명의 외국 노동자들과 경찰간에 숨바꼭질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단 주변의 택시와 음식점에서도 “손님이 없다”며 너도나도 울상을 짓고 있었다. 임도수 안산상의 회장(보성파워텍 대표)은 “힘들게 제조업을 끌어가려는 사람들과 기업가 정신이 갈수록 사라지며 국내 투자가 위축되는 게 큰 문제”라며 “정치권과 정부, 기업, 노조 등 경제주체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산=고광본기자 kbg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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