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의 이론적 배경
가상 법정서 '치열한 공방'
옳고 그름 판단 독자에 맡겨
재판정으로 한 남자가 들어와 피고석에 앉는다. '국부론'으로 잘 알려진 애덤 스미스다.
검사석에는 인간 사회를 무질서로 보고,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권력을 계약의 관점에서 파악한 토마스 홉스가 앉아 있다. 홉스가 공소장을 읽는다.
"인간의 자기이익 추구를 바탕으로 한 경제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적 공익도 증진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시장이라는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아가게 한 과대망상적 효율지상주의자입니다. 본인은 피고를 금융위기방임죄로 기소합니다".
애덤 스미스(1722년~1790년)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활동했던 토마스 홉스(1588년~1679년)가 검사가 돼 애덤 스미스의 죄를 추궁한다.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은 가상의 공간인 재판정에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토마스 맬서스, 칼 맑스 등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을 법정에 세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기 파괴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 그 내재적 속성으로 인해 반드시 멸망하고 국가가 소멸한다고 주장한 칼 맑스는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국가전복 음모죄로 기소된다.
'인구론'을 통해 인구의 자연 증가는 기하급수적인데, 식량의 생산은 산술급수적이므로 인간의 빈곤은 자연 법칙의 결과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 맬서스의 경우는 후손들이 그를 비판한 비판론자들을 사자명예훼손죄로 고발한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의 업적을 깍아내리기 위해 법정에 세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누구의 편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책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들어보기 위해 이미 존재하지 않는 그들을 법정에 불러낸다. 법정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저자가 법정이라는 공간을 설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덤 스미스의 경우 시장만능주의자라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사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을 단 한 번 사용했다. 또 시장에 맡기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이야기는 국부론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익 추구가 실현되는 시장의 역할에 주목했을 뿐 정부의 개입 자체를 악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또한 애덤 스미스는 그의 또 다른 저서 '도덕감정론'에서는 무분별하게 부유함만을 쫓아가면 부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책에는 이처럼 애덤 스미스를 기소하는 역할을 맡은 홉스 외에도 '순수이성비판'으로 유명한 이마누엘 칸트가 변호사로 등장해 스미스를 옹호하기도 한다. 인구론에 대한 예언이 빗나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멜서스의 경우 그를 비난하는 이들뿐 아니라 인구의 증가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부존자원의 고갈은 인간이 직면하게 될 문제라는 점에서 그를 옹호하는 이들 역시 등장한다.
자유무역이론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리카도 역시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유발시켰다는 이유로 고발당하지만, 저자는 리카도가 지주, 자본가, 노동가의 분배게임에서 승자는 불로소득으로 사는 지주뿐이라고 생각하며 곡물 수입을 제한하도록 관세를 부과하도록 한 곡물법 폐지를 주장한 이였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책에서 저자는 치열한 공방을 보여줄 뿐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독자의 판단이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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