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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정구현 KAIST 교수

경제 업그레이드시키려면 망하는 대기업 놔둬야



모든 환경 변하는 기업 복합전환기 직면… 근본적 경영혁신 할 때

무상보육 등 복지 조정하고 2018년부터 부가세 중심 증세 필요

선진-후진국 가른것은 재정건전성… 국회서 재정규율 법제화해야


"망하는 대기업, 놓아둬야 합니다." 좌파 시민단체에서 나오는 구호 같지만 뜻밖에도 평생 기업경영을 연구한 노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정구현(사진)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경제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이 같은 극약처방도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신산업으로 돈과 인재가 흘러가지 못하는 것인데 대기업이 이를 틀어쥐고 물꼬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표 민간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 수장을 6년간 지낸 정 교수는 현재 기업이 처한 현실, 노동시장 개혁, 복지·증세 논란 등 난마처럼 얽힌 경제현안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해법을 제시했다. 특히 기업에 대해 "모든 환경이 동시다발적으로 변하는 '복합전환기'에 직면했다"며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경영혁신을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새해 벽두부터 불거진 복지와 증세 논쟁과 관련해서도 "일단 복지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오는 2018년부터 증세를 단행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앞으로 3년간은 정교하게 지속 가능한 복지 프로그램을 설계한 후 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증세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2월24일 서울 종로타워에 있는 정 교수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망하는 대기업을 놓아둬야 한다는 지적이 재미있다.

△1990년대 미국 IBM의 사례가 있다.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IBM은 루 거스너라는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하며 약 10만명을 감원했다. 해고당한 사람들은 능력도 있고 그동안 모아둔 돈도 있었다. 창업을 했고 결국 지금의 실리콘밸리의 뿌리가 됐다.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어떨까.

△지금 우리나라 신산업이 크지 않는 것은 대기업이 돈과 인재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업그레이드되려면 전통산업에 있던 자원이 신산업으로 흘러가야 한다.

-망하는 대기업에서 나온 돈과 인재가 신산업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일단 인재들이 신산업으로 흘러가는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2000년대 초 벤처 열풍 때보다 열기가 더 뜨거운 것 같다.

-최근에는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기는 한데.

△30~40대의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이 미래가 보장되지 않으니까 창업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50대 넘어서까지 직장을 다닐 확률이 50%도 안 되는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 이를 풀어주고 인재도 보충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평생 기업경영을 연구했다. 요즘 기업들이 어렵다고 한다.

△우리 기업들이 저성장 고착화, 사물인터넷(IoT), 중국의 약진 등 '복합전환기'에 직면했다. 특히 중국 기업은 돈도 많은데다 넓은 내수시장까지 갖고 있다. 이전에는 우리 기업이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였는데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고 이제는 '패스트 이노베이터(빠른 혁신자)'까지 진화했다.

-복합위기인데, 우리 기업들이 벗어날 해법은 없을까.

△근본적인 경영혁신을 해야 할 때다. 우리 기업들, 50년간 체질이 굳어졌다. 관료화돼 있다는 뜻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을 갖고 대응하지 않으면 힘들어질 것이다. 기업 내부부터 혁신이 필요하다. 지배구조·조직문화가 수평해져야 한다. 전문경영자나 오너 할 것 없이 너무 보수화돼 있다.

-연초부터 연말정산 파동으로 복지와 증세 논란이 거세다.

△일단 2018년까지는 복지 프로그램을 조정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무상보육 등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왜 2018년인가.

△우리나라는 고령화 비율(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이 2018년에 14%로 상승해 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지금은 12%다. 그때까지는 복지 프로그램 조정만으로 재정이 견딜 수 있다.

-세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세금을 올려야 할까.

△세금은 크게 네 가지다. 법인세·개인소득세·유류세·부가가치세가 그것이다. 일단 법인세는 세계적으로 하향 추세라 올리기 부담스럽다. 올리면 시장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현재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이 38%다. 지방세·의료보험·국민연금 등 사회복지 부담금을 다 합치면 실제 세율은 48% 정도다. 이것을 얼마나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류세와 부가가치세는 어떤가. 조정의 여지가 있다고는 보는지.

△유류세는 유가 변동이 크므로 세율을 올리는 게 부담스럽다. 부가세를 올려야 한다고 본다. 통상 부가세를 올릴 때 걱정하는 게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때다.

-복지와 증세 문제에서 재정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3년 연속 재정적자를 봤는데.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재정건전성은 상충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정책을 펴면 재정건전성은 물 건너간다. 이것을 막기 위해 재정규율을 세워야 한다.

-재정규율이라면 어떤 식인가.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를 넘으면 안 된다'거나 '국가부채가 GDP의 60%를 넘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정해야 한다. 국회가 다른 것보다 재정규율 법제화부터 해야 한다. 독일·덴마크·네덜란드·스웨덴 등 북유럽 선진국과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 흔들리는 남유럽 국가를 가른 것은 바로 재정건전성이었다.

-일본이 이런 규율이 없어서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던 것으로 안다.



△일본은 1991년 국가부채가 GDP의 70%였는데 6~7년 만에 110%가 됐다. 우리도 규율 없이 복지만 늘리고 증세를 안 하면 재정적자가 GDP의 5%까지 늘 수 있는데 한번 그렇게 되면 못 줄인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중점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도 인재가 신산업으로 가는 길을 터주는 방법이다. 우리는 노동조합이 강력해 경쟁력이 약해지는 산업에 종사하는 인재가 새로운 산업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정부가 이를 풀어줘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개혁의 핵심은 유연성 확보다. 기업들이 한번 채용하면 해고하기가 쉽지 않아 채용을 꺼리고 있다. 유연성이 확보되면 청년실업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지방정부가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실마리를 풀었으면 한다. 광주시가 노사정 타협을 통해 기아자동차 근로자의 평균 급여를 3,000만~4,000만원으로 거의 절반으로 낮추는 대신 신규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년 전 서울경제신문 신년 인터뷰에서 "자산 디플레이션 압력이 상당하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규제가 많이 풀렸다.

△기대 이상의 조치를 취했다. 앞으로 부동산 정책도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전에는 부자들이 집을 많이 보유하니까 이를 막는 정책을 썼다. 빈부격차 문제,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탓이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 모두가 집을 갖고 있어도 가치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고 디플레이션 기대도 있다.

-사람들이 집을 안 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전세가가 집값의 90%까지 올랐다.

△집값이 5억원인데 전세가 4억5,000만원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택 보유에 대한 세금을 줄여주는 게 필요하다. 선진국 식의 장기 저리 대출도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는 20년 이상의 장기 저리 대출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 주택연금도 활성화해 사람들이 '주택을 갖고 있으면 나중에 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최근 중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등 전 세계가 금리인하 행진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금리를 올리기가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금리를 올린다고 하면 기업들·소비자들이 반대한다. 상방경직성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따라 올려야 할 텐데 지금 많이 내리면 그때 힘들 수 있다. 또 금리가 더 내려가면 전셋값은 뛰고 소비는 줄어들 것이다. 가계부채도 더 빨리 늘어날 수 있다.

He is…

△1947년 서울 △1969년 서울대 경영학과 △1973년 미시간대 경영학박사 △1978~2003년 연세대 경영대 교수 △1992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원장 △2003~2008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2004년 한국경영학회 회장 △2008년 한국경영교육인증원 원장 △2011년 경기도선진화위원회 위원장 △2012년 제4대 자유기업원 이사장 △2013년 경기개발연구원 이사장 △현 KAIST 경영대학원 교수



"디스인플레 몇 년 더 갈 것… 2018년부터 본격 디플레 압력"

저성장·저소비 뉴노멀 진입

이태규 기자

정구현 KAIST 교수는 우리나라에 디플레이션 위험을 가장 먼저 경고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서울경제신문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 둔화) 초입에 들어섰다. 그다음은 디플레이션인데 이는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황 진단도 정확했다. 지난해 8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에 있다"고 언급한 후 국내에 디플레이션 논쟁에 불이 붙자 그는 "지금은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후 최 경제부총리도 "현재는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방향을 틀었다.

디플레이션 예언자가 보는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정 교수는 "당분간 디플레이션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고령화 비율(전체 인구 중 65세 비중)이 12%로 고령 사회(14%)에 진입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직 지갑을 열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둘째는 노동조합이 강한 것이 근거다. 정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근속 연수가 오래될수록 월급을 많이 주는 연공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이 1년에 적어도 1~2%씩은 오르게 돼 있다"며 "임금이 오른다는 것은 사람들이 소비를 할 여유가 커진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디플레이션에 빠졌는데 우리는 일본만큼 버블이 심하지 않다.

정 교수는 이미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대만에 비해서도 우리의 디플레이션 압력이 강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대만은 지난 2002년과 200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후 현재 물가 상승률이 1% 내외인 디스인플레이션 상태다. 그는 "대만은 디플레이션에 빠지기 전 기업들이 대거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13년간 국내 임금 상승률이 3%밖에 안 됐다. 임금이 제자리였다는 뜻"이라며 "그에 비해 우리는 매년 오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물가 상승률이 1% 내외의 디스인플레이션이 몇 년 더 지속될 것"이라며 "디플레이션 압력이 오는 2018년께 본격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8년부터 고령화 비율이 14%로 상승해 고령 사회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지금 우리 여건상 60세 이상부터 제대로 된 직장이 없기 때문에 심지어 돈이 있는 사람도 씀씀이를 줄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60세 이상 인구가 600만명인데 5년 뒤에는 1,100만명까지 증가한다"며 "이들의 소비가 줄면 기업들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제품 가격을 내릴 것이고 이는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편 우리 경제가 저성장·저소비·저금리의 '뉴노멀(새로운 정상적인 상태)'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의 중국말)라는데 우리도 뉴노멀이다. 국민들은 2~3%대 성장에 적응하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만 적응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담=이상훈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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