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졸속 처리 논란이다. 당장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지 닷새 만에 수정안이 나오면서 '조령모개'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는 '대통령 바라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리더십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ㆍ정무적 비판을 차치하고라도 '초보적 단계'의 증세정책이 거센 여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앞으로 복지확대를 위해 정부가 추진할 중장기 세제개편의 큰 흐름까지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이번 소동이 가져온 또 다른 상처다.
정부는 당초 3,450만원으로 제시했던 세부담 기준점을 5,500만원으로 높이면서 뚜렷한 근거를 이번에도 제시하지 않았다. 왜 세부담을 늘려야 하는지, 그 기준이 어째서 총급여 5,500만원인지 충분한 설득의 과정이 없었다는 얘기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국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령모개를 넘어 주먹구구라는 조세정책의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중산층 납세자와 야당의 반발에 정부가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중장기 세금 정책도 상당한 부담을 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현재 20.2%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오는 2017년까지 21%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번 선례에 따라 증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강력 반발하는 사례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는 이번 소득세 개편에 이어 재산세와 법인세 등을 줄줄이 손볼 예정이었는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복지 수준도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확보한 세수를 바탕으로 근로장려세제(EITC)와 자녀장려세제(CTC) 재원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준점이 5,500만원으로 후퇴하고 7,000만원 이하의 세부담이 완화되면서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세수부족이 나타나 결국 복지혜택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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