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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어내는 90년대 문화

키워드로 읽어내는 90년대 문화이런 단어를 한번 나열해보자. ‘포스트 식민주의’ ‘하위문화’ ‘인디문화’ ‘젠더’ ‘섹슈얼리티’ ‘포르노그라피와 욕망’ ‘일상과 문화정치’. 범박하게 대충 열거해보더라도, 마치 열병처럼 번졌던 이런 키워드는 어떤 시대적 근육의 한 발작이나 경련, 또는 그 미세한 표정을 담고 있다. 90년대 중반이후 대표적 문화비평 모아 ‘이데올로기’니 ‘하부구조’ ‘독점자본’이니 하는 말과 마주놓고 보면, 분명 그것은 1990년대의 육체다. 그 언어적 육체 사이로, ‘서태지’‘헤드뱅잉’ ‘O양의 비디오’ ‘폭주족’ ‘동성애’ ‘스타크래프트’ 등의 이질적인 혈관들이 얽히고 설키었다. 그러고보면, 1990년대는 소비문화의 새로운 주역인 ‘신세대’ 문화의 등장만큼이나 그 문화를 헤집거나 덧칠하고 가로질렀던 ‘문화적 담론’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담론의 증폭지로서 ‘현실문화연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번에 나온 ‘문화읽기_삐라에서 사이버 문화까지’(현실문화연구)도 1990년대의 문화읽기의 연장선 상에 있다. 1994년 나온 ‘문화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종합적인 비평서이다. 그러나 예전의 파괴력은 어쩐지 좀 물렁물렁해진 느낌이다. 동 시대의 현실문화와 접속했다기 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 발표된 글들을 그저 모아두었기 때문일까. 책은 ‘문화과학’ ‘문학과 사회’ ‘리뷰’ ‘이다’ ‘인물과 사상’ 등의 잡지에 실렸던 대중문화 비평 24편을 ‘제국주의, 식민주의, 포스트 식민주의’ ‘대중문화와 청중’ ‘청년·하위문화와 저항의 언어’ ‘젠더와 섹슈얼리티’ ‘포르노그라피, 욕망, 그리고 검열’ 등 8개의 장으로 나눠 실었다. 김종엽, 이성욱, 김정란, 김소영, 주은우, 백지숙, 서동진, 고길섶, 홍성태 등 저자들 모두 스타급 문화비평가라 할만한 이들. 그러니까 책은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발표된 대표적인 문화비평을 모아둔 셈이다. 각 비평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등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영턱스 클럽’ ‘X파일’ ‘옷 로비 사건’ ‘처녀들의 저녁식사’ ‘O양 비디오’ ‘젖소부인’‘딴지일보’ ‘종로 거리’ ‘채팅’ 등. 대중문화의 시각적 현란함 만큼이나 ‘문화읽기’도 날렵하게 대중문화를 전천후로 활보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 활보는 어딘지 둔탁하다.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X파일’에서 세기 말의 공포와 그 밑에 깔린 억압된 신체의 귀환을 읽어내는 논문(주은우, ‘세기말의 공포문화, 그리고 X파일, 불가해한 세계의 은유’)도 그렇다. 버디 무비와 SF 공포물의 혼성 잡종 장르에 속한다는 이 드라마는 지금 보면, 미스터리 형사물의 정통물처럼 느껴진다. 하드고어와 코믹이 섞이면서 가혹하리만치 경쾌한 공포, 즉 ‘엽기’가 현재의 키워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또한 ‘O양 비디오’나 ‘옷로비’사건 등 한물 간 사회적 스캔들이나 ‘영턱스클럽’ ‘처녀들의 저녁식사’ ‘채팅’등 유행을 지난 문화적 대상에 대한 해체적 분석은, 그 분석의 정치함을 떠나서,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것 같다. 이미 그물망을 빠져 나간 유행과 그 흔적을 애써 붙잡고 혼자 열심히 뒤집는 듯한 비평이다. 대중문화의 유행만큼 비평 역시 어쩔 수 없이 그 순간성에 저당 잡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때문에 기획자도 기록과 자료적 가치로서 이 책을 엮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2000년대 대중문화의 내일을 예감하기 보다, 1990년대 대중문화의 역사를 조감해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의미이겠다.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행과 그 유행에 대응하고자 했던 전복적 읽기를 통해, 1990년대의 문제 지형을 비판적으로 매듭짓는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불과 2, 3년 전에 쓰여진 글 들임에도 벌써 ‘역사화’한 느낌을 주는거라든지, ‘출판사’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동시대 현실문화에 대한 첨예한 연구에서 비껴난 출간이라는 점 등은 여전히 남는 불편함이다. 신세대문화에서 ‘N세대 문화’ 등으로 지칠줄 모르게 진화하는 현실 대중문화와 달리, 그것을 읽는 힘은 90년대 후반 이후 여전히 지지부진함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대목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입력시간 2000/07/26 19:42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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