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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국민이해사업(과학대중화를 위하여)
입력1997-05-07 00:00:00
수정
1997.05.07 00:00:00
허두영 기자
◎“일방적 국민 계몽” 발상부터 잘못/유럽선 보통사람 의견반영 「합의회의」 정착/국민의 신뢰·토론통한 민주적 정책 결정을김진현 장관(재임 90∼93년)은 역대 과기처 장관 가운데 과학대중화에 남다른 관심을 쏟은 장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학기술진흥재단(과학문화재단의 전신)이 발간한 보고서는 대부분 김장관 시절에 기획된 것이다.
「과학기술 국민이해사업」도 이때 등장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명칭부터 잘못 정했다. 정부가 과학기술을 국민에게 이해시키겠다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당시 과학기술 국민이해사업은 안면도 사태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선정사업이 백지화되면서 원자력에 대해 무식한(?) 국민들을 계몽시켜야겠다는 필요에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 사업은 국민이 과학기술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사업을 일방적으로 이해시키겠다는 잘못된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원자력이 과학기술적으로 안전하다하더라도 정치적인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하고, 경제적인 사업성이 타당해야 하며, 환경과 고용 등의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사회의 총체적인 문화다. 안면도와 굴업도에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사업을 백지화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사회의 총체적인 문화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부터 과학기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굳이 권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과학기술 국민이해사업」을 벌이지 않더라도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행정으로 과학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유럽 각국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는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가 그 좋은 본보기다.
합의회의는 정부가 과학기술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과학기술 전문가가 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동떨어진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한 제도다.
곧 재판의 배심원처럼 나이·성·학력·직업·지역 등 각계각층에서 선정된 보통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과학기술 주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설명을 듣고 정리한 의견을 발표하여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덴마크·네덜란드 등에서 ▲대기 오염 ▲가상현실 ▲유전자 조작 ▲불임치료 ▲전자주민카드 ▲교통정보기술 ▲유전자 치료 ▲식료품 방사선 처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합의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들 국가는 ▲동물 유전자 조작기술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중단하고 ▲인력 채용에 유전자 검사를 이용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으며 ▲교통신호체계 정비에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 고려하는 기술을 개발토록 했다.
또 합의회의는 정부의 민주적인 정책 결정과정에 기여할 뿐아니라 참여한 배심원은 물론 언론을 통해 이를 지켜본 일반 대중들도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넓힌 것으로 나타나 과학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기처는 과학기술 국민이해사업으로 ▲과학기술진흥협회 창립 ▲과학 축전 ▲과학기술문화 캠페인 ▲과학기술이해 시범교실 등의 사업을 추진 또는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무지한 대중을 일방적으로 개화시키려는 계몽주의적인 접근방식이 아니라 보통사람들과 과학기술자간의 대화와 토론을 통한 민주적인 정책 결정과정이 진정한 과학대중화를 지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부터 깨달아야 한다.<허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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