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0월5일, 프랑스 동북부 랭스 상공. 고도 200m에서 프랑스와 독일 군용기가 맞붙었다. 결과는 프랑스의 승리. 독일기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인간의 싸움무대가 3차원 공간으로 확장된 순간이다. 승패는 애초에 갈렸다. 독일의 2인용 '아비아틱'은 후방 정찰수가 소총을 장비했던 반면 프랑스가 정찰 겸 대지공격용으로 운용한 '브아종 3'은 프로펠러가 동체 뒤에 달려 전방 시야가 트였을 뿐 아니라 무장으로 루이스 기관총을 달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아비아틱은 47발의 총탄을 얻어맞고 10분을 버티다 추락했다. 적기와 만나면 연장을 던지던 수준이던 공중전에서 첫 희생자가 발생한 후 공중전투와 생산기술이 크게 바뀌었다. 각국은 우선 생산을 늘렸다. 1차대전 발발시 독일의 가동 군용기는 비행선을 포함해 180여대. 영국은 184대를 보유했으나 투입 가능한 기체는 30여대에 그쳤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각국은 17만5,000여대의 군용기를 만들었다. 2차대전(1939~1945년) 중에는 연합국 64만4,142대, 주축국 20만7,004대 등 무려 85만1,146대의 군용기가 하늘을 덮었다. 나무 골격에 캔버스천을 씌운 1차대전형과 달리 2차대전 때부터는 완전금속제로 탈바꿈해 생산가격도 수십배로 뛰었으나 격추는 오히려 쉬웠다. 복잡하게 설계된 기체의 일부만 맞아도 곤두박질쳤다. 오늘날 전투기 가격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미국의 최신예기인 F-22는 무장을 제외한 기체가격만 1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불과 수백달러면 생산할 수 있었던 1차대전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각국은 보다 뛰어난 군용기를 개발ㆍ생산하려 목을 맨다. 군사ㆍ과학기술의 발전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에는 광기가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