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도시형 생활주택 '빛좋은 개살구' 되나
 |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도시형 생활주택사업이 좀처럼 사업 속도를 못 내고 있다. 특히 도시 내 2~3인 가구 전세 수요 흡수를 위한 단지형 다세대의 경우 땅값이 뛰면서 사업 추진이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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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대형 건설업체인 H사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형 생활주택을 짓기 위해 사업성 검토작업에 들어갔으나 결국 포기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도시형 생활주택을 분양 받은 사람에게 적어도 연 6~7% 이상의 임대수익이 보장돼야 사업이 가능하지만 비싼 땅값으로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해 이 같은 수익률이 나오기 힘든 구조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서울 신촌이나 신림동 등 학생 수요가 많은 곳도 월세 60만~70만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가구당 분양가가 1억5,000만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며 "하지만 서울시내 도시형 생활주택사업을 할 만한 땅들은 가격이 너무 올라 분양가를 맞추기 힘들다"고 말했다.
단지형 다세대는 부지 마련 자체도 쉽잖아
금융지원등 특단대책 없인 사업추진 힘들어
도시형 생활주택이 '땅값'에 발목이 잡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규모가 큰 단지형 다세대의 경우 사업 여건이 더 좋지 않아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도시형 생활주택이 벌써 한계에 부닥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현재 사업승인이 난 도시형 생활주택은 전국 9건, 총 530세대에 그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2건, 대전 3건, 경기도 2건, 부산 2건이다. 유형별로는 원룸형이 369가구로 가장 많고 기숙사형이 104가구다. 단지형 다세대는 57가구, 1건에 불과하다. 서울 신림동에서 한원건설이 오는 12월 중 원룸형 149가구에 대한 첫 분양에 나설 예정이지만 제도가 도입된 지 반년이 지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실적이라는 평가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업체들이 도시형 생활주택에 대한 추가 규제완화를 기다리면서 사업을 미뤘던 측면이 크다"며 "규제완화가 마무리됐고 대기수요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는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실제로 2월 도시형 생활주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후 2~3차례에 걸쳐 주거전용면적 기준, 주차장 면적 기준 등 각종 건설규제를 완화했다.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을 늘려 1~2인 가구 및 전세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잇따라 규제완화를 해주며 기대감을 키우는 사이 도시형 생활주택사업을 할 만한 역세권ㆍ대학가 등의 노후주택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실제 도시형 생활주택사업 적격지로 평가 받았던 한국외국어대 주변인 이문동의 경우 노후 빌라 등의 대지지분이 3.3㎡당 2,000만~3,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의 한 관계자는 "주택재개발 예정지에서 빠져 있던 지역까지 도시형 생활주택 호재로 재개발지역 수준으로 가격이 치솟았다"며 "토지 소유주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도시형 생활주택 건설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가 전세 대책으로 내놓은 도시형 생활주택이 자칫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우려도 제기된다. 원룸형과 기숙사형의 경우 그나마 토지 소유자들이 독자적으로 사업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규모가 큰 단지형 다세대의 경우 땅을 마련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용식 수목건축 대표는 "기존 소규모 빌딩 등을 원룸형과 기숙사형으로 바꾸는 것은 수익성이 괜찮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정 규모 이상 땅을 확보해야 하는 단지형 다세대의 경우 땅값이 너무 올라 사업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소 규모 건설업체가 땅을 매입해 추진하는 사업은 거의 없고 90% 이상의 사업이 토지 소유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도 "현재처럼 사업비에서 땅값의 비중이 큰 상황에서는 건설사들이 도시형 생활주택사업에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없다"며 "금융 지원 등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정부의 예상처럼 적재적소에 도시형 생활주택이 활성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설명
☞도시형 생활주택=도시지역에 건설하는 20가구 이상 150가구 미만의 공동주택이다. 단지형 다세대 주택, 원룸형 주택, 기숙사형 주택으로 세분화된다. 단지형 다세대는 전용 85㎡ 이하 다세대 주택을, 원룸형 주택은 전용 12~50㎡의 독립된 주거가 가능한 주택을 말한다. 기숙사형 주택은 전용 7~30㎡로 취사ㆍ세탁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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