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3세의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평론가로 '문학의 교황'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29년 폴란드 브워츠와베크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성장했으나 1938년 폴란드로 강제 추방당해 바르샤바 게토에 수용됐다. 그리고 1943년 트레블링카 수용소로 이송되기 직전 아내와 함께 극적으로 탈출해 1958년 서독으로 넘어온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 2003년 독일에서 출간된 그의 비평서를 번역한 '작가의 얼굴'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시작으로 괴테, 안톤 체홉, 카프카, 귄터 그라스 등 세계적인 문학 거장을 소개한다. 그는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평론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8~2001년 방송된 텔레비전 서평 프로그램 '문학 4중주'를 통해 지금의 높은 인지도를 얻었지만, 솔직하고 거침없는 비평과 대중친화적 태도로 인해 영향력 있는 작가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지난해 1월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에 독일 연방의회에서 유대인 대표 연설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신작 '작가의 얼굴'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평론뿐만 아니라 작가의 초상화도 함께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작가 초상화 60여점이 실렸다. 철판화, 석판화, 에칭, 드라이포인트, 연필 스케치 등 그림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브라질의 그래픽 아티스트 카시오 로레다노의 잉크 드로잉 작품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가 그린 뛰어난 그림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와 함께 해당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대표적인 예로 하이네에 대한 비평에서는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하이네의 서정시는 섬세하면서도 신랄하고, 격정적인 동시에 풍자적이고 종종 슬프지만 그러면서도 익살스럽다. 해학이 있었기에, 독일인이자 유대인인 하이네가 온 유럽에서 받아들여졌고, 엄청난 사랑까지 받을 수 있었다."
라이히라니츠키가 지나치게 솔직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가졌지만, '문학의 교황'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로 비평가들은 그의 뚜렷한 비평관을 꼽는다. 다른 많은 문학비평가와 다르게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어렵게 말하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 책은 문학평론가들도 이처럼 이해하기 쉽고, 재미 있게 문학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1만 8,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