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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호특집/금융의 증권화] 은행시대가고 증권시대 온다
입력1999-06-11 00:00:00
수정
1999.06.11 00:00:00
정명수 기자
국제통화기금 체제이후 금융시장의 패라다임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금융의 증권화 현상」이다. 금융의 증권화는 직접금융비중의 확대와 자산유동화채권의 등장 등 두가지로 요약된다.
직접금융비중의 확대는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이 은행차입에서 주식, 채권발행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것을 가르킨다.
기업 금융에 관한 한 금융의 중심축이 은행에서 증권·투신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금융시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금융기관간 권력구조와 서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금융기관하면 은행을 연상하던 시절이 서시히 막을 내리고 역동적인 자본시장을 배경으로한 증권, 투신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직접금융시장의 팽창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기업에 대출한 자금은 92조8,510억원으로 97년보다 1조4,445억원 줄어들었다. 간접금융시장이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반면 직접금융시장은 98년을 기점으로 급팽창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내 기업들이 직접금융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70조1,283억원. 주식이 14조1,580억원, 채권이 55조9,702억원을 차지했다. 98년도 직접금융 규모는 97년에 비해 무려 85.9%나 늘어났다.
절대규모에서는 아직도 은행의 기업대출이 주식, 채권발행 규모보다 많다. 그러나 시장의 성장속도가 엄청나게 차이나기 시작했다.
90년 은행 대출금은 36조7,690억원. 이때 직접금융 규모는 14조원으로 은행 대출금의 39%에 불과했다. 지난해 직접금융은 은행 대출금의 76%까지 근접했다. 90년이후 8년간 은행대출은 155% 성장했지만 직접금융은 무려 400%나 증가했다.
◇패라다임의 변화
금융의 중심축이 은행에서 증권, 투신으로 이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97년 외환위기다.
한국경제가 IMF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하면서 은행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철저하게 해체됐다.
부실대출, 비합리적인 대출관행, 방만한 자산운용등 국내 은행들의 구조조적인 결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당면한 금융구조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자본시장을 적극 활용키로 했다. 낡은 은행시스템으로는 효율적으로 외자를 끌어들이기 어렵고 자본을 분배하기도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마침 IMF, IBRD로 대표되는 국제금융사회도 한국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금융개방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정부는 낙후된 증권시장을 효율적인 자본시장으로 바꾸기 위해 외국인 증권투자 전면개방, 회계처리의 국제화, 채권시장의 선진화, 선물거래소 개장, 코스닥시장 활성화등 굵직한 개혁을 추진했다.
경제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을 자본시장에서 충당할 준비가 어느정도 갖춰진 것이다.
◇직접금융시장의 마술
지난해 9월이후 주식시장이 급등세를 나타내면서 기업들은 앞다퉈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분모에 해당하는 자기자본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기업들이 유상증자로 끌어쓴 자금은 무려 13조4,520억원에 달했다. 기업들은 간접금융시장을 이용하므로써 보다 쉽게, 싼 값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직접금융시장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와 달리 다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만 하면 된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것이 더욱 싸게 먹힌다. 왜냐하면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유상증자를 발표하면 투자자들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다.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주식의 가격으로부터 기업의 가치가 결정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여신심사부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금리가 결정된다. 반면 직접금융시장에서는 다수의 투자자가 가진 다양한 의견이 「가격」을 통해 합리적이고 능률적으로 객관화된다.
기업은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투명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직접금융시장에서 얼마든지 자금을 끌어쓸 수 있는 것이다.
◇금융권의 대응
은행들은 저금리 시대에 줄어든 예대마진으로 수익성을 확보해야하는 과제를 안고있다. 정부가 은행간 합병을 통해 은행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려고 하지만 세계금융시장은 이미 간접금융시장으로 개편됐다.
은행들도 직접금융시장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주식형펀드와 같은 단위형금전신탁 상품을 개발하거나 채권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채권딜링을 하는등 자본시장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과거 은행들은 주식투자 자체를 꺼렸으나 최근들어서는 자사의 유가증권 운용을 외부기관에 의뢰하거나 자체 운용팀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증권사와 투신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기 시작한 주식투자 열풍을 활용, 금융권의 선두주자로 부상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투신권은 130조원이 넘는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주식형수익증권 판매금액도 230조원을 넘어섰다. 투신권이 한 번 기침을 하면 회사채 수익률이 출렁거릴 정도로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증권사들은 중장기적으로 미국식 인베스트먼트뱅크(투자은행)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투자은행은 자기신용으로 자금을 조달, 기업과 금융분야에 투자한다. 이를위해 증권사들은 기업금융, M&A, 파생상품등 첨단금융분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등 유수의 금융기관들은 은행이 아니라 인베스트먼트뱅크다. 국내에도 금융백화점으로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투자은행이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 / 정명수 기자 ILIGHT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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