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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대타협, 더 미룰순 없다] "사임 배수진 치고 '개혁 필요성' 설득했죠"

해외지성에게 길을 묻다-루드 루버스 前네덜란드 총리<br>공무원 임금부터 깎은후 노사와 대화 양보 얻어내<br>국민들 일의 소중함 알게 전일제보다 파트타임 제안


“지난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 체결된 후에도 저는 끊임없이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반대세력의 견제도 계속됐습니다. (사회협약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무려 4년이 걸렸고 결국 저는 1986년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사회 대타협을 통해 ‘네덜란드 기적’의 초석을 놓은 루드 루버스(69ㆍ사진) 전 네덜란드 총리는 “정치인은 항상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들의 꿈과 요구를 담아내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심각한 경기침체에 시달렸던 네덜란드는 루버스 전 총리의 주도 아래 노사 대타협과 인센티브 확대를 골자로 한 바세나르 협약을 관철시켜 오늘의 ‘강소국’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루버스 전 총리는 당시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공무원 임금을 과감하게 삭감하는 등 모범을 보였고 노사 양측을 설득해 사회 대타협이라는 값진 결실을 이뤄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 국가에서 사회 대타협이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도자에게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풍부한 경험과 사례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가 꼽는 사회 대타협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정치인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단기적인 시각을 갖게 마련’이라는 일반 대중의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정부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핵심이며 이를 얼마나 강하고 넓게 구축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는 의미다. 지난 2월 중순에 찾은 루버스 전 총리의 사무실은 로테르담의 마스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30여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 자리잡고 있었다. 12년이나 네덜란드 총리를 지냈던 원로 정치인의 ‘평범한’ 생활에 낯설어 하는 취재진을 그는 반갑게 맞았다. -한국 사회는 지금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기 위해 사회 대타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보다 앞서 성공적으로 사회 대타협을 이뤄낸 네덜란드는 매우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 맺어졌던 당시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바세나르 협약은 제가 취임하기 직전에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이전에 저는 노사 간의 자유로운 협약에 직접 개입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미 준비됐던 ‘새 정부의 계획(Plan of Incoming Government)’이라는 프로그램에는 재정적자 축소, 민간기업의 수익성 회복, 임금인상 억제, 일자리 공유 등의 내용이 담겼지요. 이후 크리스 반 빈 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빔 콕 노총 대표를 자택으로 초청해 단독 회동을 갖고 바세나르 협약을 타결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루버스 정부의 등장과 바세나르 협약은 상당히 깊게 연관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임금과 복지혜택을 대폭 삭감하셨는데요. 한국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결과입니다.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습까. ▦1983년 9월 저는 의회에서 “이제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세나르 협약이 있었지만 정부 출범과 함께 선언했던 계획이 지지부진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먼저 공무원 임금을 과감하게 삭감하겠다고 선언했고 사회보장 혜택도 줄여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의 임금도 1.0~1.5% 줄어들었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와 노조의 심각한 충돌이 있었지만 결국 정부의 입장이 수용됐습니다. -고비도 있었지요. 자료에 따르면 총리 취임 이후 만 2년이 지난 1984년에 네덜란드의 실업률이 급증해 매월 10만개씩의 일자리가 없어졌더군요. 당시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면 총리직을 사퇴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개혁조치가 내려졌지만 실업자는 계속 늘어갔습니다. 실업자가 계속 늘어 전국적으로 100만명을 초과하면 사임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지요. 사람들은 이것(실업자 감소)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저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건부사임 선언을 한 것은 기본적으로 개혁이 이뤄질 경우의 성과에 대해 사회와 소통하고 국민들에게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기 때문에 그들이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사회협약을 통해 개혁을 추진한다는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데 얼마나 걸린 겁니까. ▦(연임을 위한) 선거운동이 시작될 때까지 4년 동안 진행됐습니다. 당시 바세나르 협약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반대파의 견제를 받아야 했고 그 와중에서도 전국민들을 설득해야 했지요. 그런데 선거 결과 국민들은 저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아마도 바세나르 협약에 따른 경기부흥정책으로 경제가 조금씩 회생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4년 동안 네 번의 위기가 있었고 저는 끊임없이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네덜란드 경제개혁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우선 국민과 충분히 소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확인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정부 혼자 풀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말했던 것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했던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접근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전일근무 일자리가 아니라 파트타임 일을 제안했던 거지요. 과도한 복지우산을 쓰고 있던 국민들은 일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왜 파트타임을 제안하셨나요. ▦(노동 없는 복지가 극에 달했던) 1990년대 초에 저는 ‘네덜란드는 병들었다(Netherlands is sick)’고 선언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남편은 하루 종일 일하고 아내는 집에 있는 것보다 남편이 하루에 6시간 일하고 아내는 4시간 일하는 것인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결국 한 가정 단위로 따지면 일하는 시간이 1.4배 늘어나는 것 아닙니까. 이를 위해 노동시장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끝으로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오랜 시간 총리로 계셨는데 정부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미 말한 것처럼 대중과의 소통 외에 국민이 정치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일반적 인식을 불식시켜야 합니다. 국민은 정치인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단기적인 시각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 국민은 정치인이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점에서 다소 예외였는데, 개인적으로 내는 세금보다 많은 돈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유엔 고등판무관으로 있을 때는 월급을 그대로 기부했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나와 대화 상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도출하기 위해 고민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루버스 前총리는
'네덜란드 병' 치유 최장수 총리 기록

네덜란드 역대 최장수(1982~1994) 총리였던 루드 루버스. 그가 재무장관을 거쳐 43세에 총리에 취임했던 지난 1980년대 초 네덜란드 경제는 거의 파탄이 난 상태였다. 1970년대 과도한 복지지출과 오일쇼크 등으로 1981년부터 이 나라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대로 떨어졌다.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극도로 위축됐고 실업자도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1982년 선거에서 정권을 잡은 루버스 전 총리는 '네덜란드 병'을 타개할 대책으로 복지 시스템 개혁과 임금인상 억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 간의 타협이 전제돼야 했다. 결국 그는 임금인상 억제에 노사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이는 노사의 양보와 합의를 끌어냈다. 이것이 1982년 11월 체결된 '바세나르 협약'. 루버스 전 총리의 처방에 따른 사회 대타협은 성공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0.3%였던 네덜란드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1984년 이후 1996년까지 2.5%를 기록했다. 국제사회는 "네덜란드가 사회 대타협인 '폴더(간척지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모델'을 통해 기적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경제가 불황에 빠지자 다시 노사를 설득해 1993년 12월 두번째 협약인 '새로운 길 협약(A New Course)'을 유도하는 등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현실인식에 기반을 두고 일관된 목표로 강력한 주도권을 행사한 루버스의 리더십이 네덜란드 개혁의 성공요인"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총리직에서 퇴임한 후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유엔 고등난민판무관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로테르담 기후 국민발의'라는 환경단체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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