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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창원일기'와 아나키즘
입력1999-07-22 00:00:00
수정
1999.07.22 00:00:00
申 正 燮<사회부 차장>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 다음으로 유명한 일기로 꼽힌다는 「昌源일기」. 탈옥범이자 좀도둑인 신창원(申昌源)의 일기장 때문에 나라 전체가 시끄럽다.
신창원이 붙잡힌 것을 두고 젊은 청소년들 사이에선 『애석하다』는 반응이 다수라고 한다. 또 일부에서는 『영화나 만화, 소설의 주인공으로 신창원을 만들자』며 떼돈 벌 생각으로 그의 아버지와 접촉을 하고 있다 한다.
참으로 이상한 징조들이다. 이들은 검찰이나 경찰이 밝히는 범죄사실을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신창원을 범법을 저지른 죄인으로 보기를 거부한다. 검찰과 경찰의 공권력을 농락한 영웅으로 그를 희화화 하려 든다. 국민들의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위험수위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들과 사회가 국가의 제도와 기능을 사시(斜視)로 보고, 선악과 진위(眞僞)를 가리는 도덕적 잣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그대로 「아나키즘」의 도래를 예고하는 빨간 신호를 보는 것 같다.
특히 「창원일기」에서 불거지는 우리 사회의 치부, 특히 공권력을 둘러싼 한심한 일들은 낯을 들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를 잡기 위해 잠복근무중이던 경찰관이 그의 동거녀를 성폭행 했다는 대목에서는 그만 아연해진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충격과 함께 수치스러움을 안겨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법을 집행할 경찰관이 탈옥범을 숨겨준 여인의 약점을 이용, 성폭행했다니 믿을 수 없다. 관련자인 김모라는 경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변명을 하는 모양이다. 한술 더떠 경찰청측은 피해자가 지나간 일로 처벌을 원치 않고 있는데다 친고죄인 만큼 형사적 책임을 묻기가 곤란하다고 말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중인 경찰관이 범인의 동거녀에게 성폭행이나 하면서 범인을 놓쳤다면 엄벌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창원일기」를 보면 왜 그가 탈옥후 2년6개월이나 잡히지 않고 전국을 누빌 수 있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그가 무려 900여일이나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신출귀몰한 의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본분을 망각한 일부 파렴치한 경찰관들 덕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공권력의 곳곳에 구멍이 나고 허점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은 검찰에 입건된 동거녀 오빠를 민원을 통해 풀려나게 해주고 형사들에게 사례비까지 주는 등 수배중에도 경찰서와 검찰청 등을 두차례씩 드나들었다 한다. 주요사건이 터지면 앵무새처럼 되뇌는「철통검색」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시민들의 무신경이나 신고정신 부재도 문제다. 남의 일에 무관심하다는 정도를 넘어 사회정의를 외면하는 병적증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신은 도망자의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다고 한다. 농민들과 어울려 벼베기를 하는가 하면 가출소년들·다방의 10대 여종업원들과 탈옥수란 신분을 밝히고 대화를 나눴지만 이들중 어느 누구도 그를 신고하지 않았다.
범죄나 불의, 부정을 보고도 눈감아 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우리 사회가 타락의 위험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적신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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