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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춥고 긴 겨울은 다가오는데…

金仁淑(소설가) 예년에 비해 더운 가을이라 하고, 어느 곳에서는 난데없이 매화나 개나리 따위의 봄꽃들이 봉오리를 터뜨려 가을이라는 말을 무색케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개나리 아니라 무엇이 만개하더라도 가을은 가을이다. 곧 겨울이 온다는 소리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처럼 혹독한 계절은 없다. 내가 어렸을 때 겨울맞이의 풍경은 무엇보다도 김장과 연탄으로 인상지워진다. 하숙을 치는 것이 어머니의 생업이었으므로 김장의 규모가 보통 집의 그것과 같을 리가 없었다. 친척과 동네사람들이 모여 이틀 사흘간이나 치뤄진 그 행사는, 마당 가득히 쌓아올린 배추더미와 함지박 가득한 굵은 소금과 무채 등으로 기억되지만, 반드시 또 따라붙곤 하는 것이 김장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엄습하곤 하던 추위이다. 함지박에 손바닥이 쩍쩍 달라붙을 것 같이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있었다. 겨울 날 연탄을 한꺼번에 들여놓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연탄을 광에 다 들여놓은 뒤에는 마당을 닦아야하는데 검은색 연탄물이 씻겨내려가기도 전에 마당에 얼어붙고, 그 위로 슬리퍼 바닥이 쩍쩍 달라붙곤 하던 기억이 난다. 김장이나 연탄이나 넉넉히 준비해둘 수만 있다면 그깟 추위야 무슨 상관이랴. 더욱 춥고 고달픈 기억은, 겨울이 다가올 무렵이면 반드시 늘어나곤 하던 어머니의 한숨소리였을 것이다. 연탄을 몇 장이나 들여놓을 수 있나, 김장은 또 무슨 돈으로 담그나, 하시던. 겨울은 가난의 기억이다.「가난했던 시절」이라 일컬어지던 오래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풍요의 시절」을 겪어본 지금이 오히려 본격적으로 가난했던 예전보다도 더 힘들 것이 틀림없다. 요즘은 김장도 안 담그고 겨울을 날 연탄을 한꺼번에 들여놓아야 할 일도 없지만, 겨울의 실감은 오히려 더 뼈가 저릴 것이다. 특히나 노숙자들에게는. 얼마 전, 교도소에서 막 출감한 전과자가 며칠만에 다시 의도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자수를 한 뒤 교소도행을 자처했노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와보니 살아갈 일이 막막해 차라리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교도소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 이 사회라는 곳이 교도소보다도 못 하게 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그래도 등 붙이고 잘 수 있는 내 집이 있고 다음 끼니 걱정 정도는 안 해도 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아직 배부른 고민일 지 모르겠다. 노숙자들에게 겨울을 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리적인 공간 뿐만이 아니라 마음을 쉴 수 있는 제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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