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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꿈의 나라가 아니었다”
입력2003-06-05 00:00:00
수정
2003.06.05 00:00:00
필리핀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던 필리핀 여성 A(24)씨는 지난해 10월 한 한국인 결혼 알선 브로커를 만나면서 삶이 꼬이기 시작했다. A씨는 “재산도 있고 착한 한국 남성이 있으니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브로커의 꾐에 빠져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지옥이었다. 남편은 가난한 농부에, 술고래였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국제결혼하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며 구박했고, 남편은 걸핏하면 “필리핀으로 돌아가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A씨는 불법체류자 신세가 될 수 없어 버텼지만 결국 브로커의 농간으로 이혼한 뒤 불안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2000년 12월 한국에 온 J(36)씨는 결혼 초기부터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 시달렸다. 남편은 술을 마시기만 하면 때렸고, 1년 반 동안 폭력을 견디던 J씨는 급기야 한국에 와 낳은 딸을 데리고 도망을 쳤다. 그는 지방에서 파출부로 일하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여성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남편의 폭력과 불화에 시달리면서도 불안한 신분 때문에 하소연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가 아니라 `절망의 구렁텅이`나 다름 없다.
이주 외국인 여성 상담 단체인 `안양 전진상복지관 이주여성쉼터 위홈(WeHome)`이 4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개최한 국제결혼 관련 토론회에서는 한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외국인 여성의 피해 사례가 쏟아졌다.
천주교 광주 교구 이주노동자 사목인 마리안나 수녀는 “최근 외국인 여성이 국제결혼을 통해 많이 입국했지만 결혼할 남편에 대한 선택권도 없고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두 달 전에는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아파트 10층에서 뛰어내린 필리핀 출신 여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여성들이 보호 받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점. 현행 국적법에는 국제결혼의 경우 한국에서 2년 이상 머물러야 귀화 신청 자격이 생긴다.
국적법 개정을 추진 중인 김경천 의원의 유경선 비서관은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할 수 없어 이혼할 경우 2년이 안됐더라도 잔여기간을 채우면 귀화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금연 위홈 대표는 “정부 차원에서 국제결혼 중매업체에 대해 철저히 관리하고 외국인 여성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우리의 관심과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상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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