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송현칼럼] 내부고발자 보호제도 유감

서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분식회계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고발을 촉진하는 제도가 새로 생겼다. 고발자를 보호해주는 정도로는 별 성과가 없을 것 같아 고발자에게 보상금까지 주어가며 내부고발을 장려하고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조직구성원끼리 서로 감시하는 무서운 세상이 돼가고 있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독재국가의 밀고제(密告制) 비슷한 음습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고발제도의 장점이 없지 않으나 단점 또한 대단히 염려스러운 수준이다.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는 판단에서 지금까지 법제화되지 않았던 것인데 이번 국회에서 입법화됐다. 분식회계 근절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나온 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회계부정 사건을 보면 모두가 경영책임자(오너)의 지시에 따라 내부통제조직을 무력화시키고 교묘한 방법으로 문서를 조작해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그 동안 경험한 대형 회계조작 사건들은 대부분 기업외부의 압력이 있거나 기업내부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을 때 오너가 지시하고 문서를 조작해 이뤄졌던 일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분식행위는 아무리 뛰어난 회계사라도 감사해서 적발하기 어려우며 감독원이 철저히 감리를 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도입된 내부고발자보호ㆍ촉진제도는 내부통제조직에서 무장해제당하고 문서를 위조ㆍ변조하는 조작행위에 가담했던 사람이 사후에라도 변심해 분식회계를 지시한 사람 또는 그 사실을 고발할 수 있게 하면 윗사람도 후환이 두려워 함부로 분식을 자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회계통제시스템을 아무리 강화해도 오너가 ‘내가 책임질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고 지시하면 분식회계가 이뤄지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윗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고 아랫사람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데 굳이 거역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 이를 악용하려는 못된 사람이 있게 마련인 것이 세상사다. 분식회계가 아닌데도 잘못 알아서 분식이라고 주장하면 기업은 한동안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그 고발자는 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된다. 나쁜 경우이기는 하지만 능력이 없어서 쫓겨나게 된 직원이 내부고발제도를 잘 활용하면 직장이 보장될 수도 있다. 또한 보상금을 노릴 수도 있다. 더 악의적인 유형으로 절대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분식에 가담했다가 뒤에 회사를 상대로 협박하는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누가 배반할지 모르는 조직에서 미더운 사람과 못 미더운 사람을 가려야 하고, 지금은 같이 가더라도 뒤에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가려가며 일상 경영을 해야 하는 무서운 세상이 돼가고 있다. 기업 본연의 일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성분의 사람인지를 가려야 하는 ‘관심법(觀心法)’을 배우는 노력이 더할 것 같다. 내부회계관리시스템은 원천적으로 공모를 하지 않고서는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지금까지는 분식을 지시한 주모자만 처벌을 받았지 지시에 따른 공모자는 대단히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자연히 별 부담 없이 윗사람의 지시를 순순히 따랐다. 이것이 곧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원리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하나의 대안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기보다는 현재 있는 법을 제대로 시행할 것을 제안해왔다. 즉 관련자 모두를 공동정범으로 다루는 법 집행의 엄격성을 줄곧 주장했던 것이다. 문제의 본질이 내부통제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데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면 된다. 굳이 내부인에게 고발할 것을 장려하고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면서까지 사는 사회를 만들 일은 아닌 것이다. 나쁜 일인 줄 뻔히 알면서 함께 회계문서를 조작했으면 공동정범임에 틀림없다. 법에 따라 공동정범으로 처벌하기만 하면 된다. 윗사람도 ‘내가 다 책임질 테니’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종업원도 5년 또는 10년씩이나 징역을 살 수 있는 중대한 범죄행위를 월급 몇 푼 받으려고 공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부정에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게 가담했다가 뒤에 배반하도록 하는 것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인간적이다. 회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도 생각하고 사회도 생각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