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보스턴 마라톤에 13번째 참가한 한국인 이연우(60)씨는 결승점을 불과 200m 앞두고 굉음을 들었다.
결승점을 목전에 뒀을 때만 해도 이씨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환갑인 나이에도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건각을 과시, 결승점을 밟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올해 대회에는 한국과 뉴욕 등지에서 온 아마추어 한인 마라토너 30여명과 보조를 맞춰 뛴 터라 더욱 신바람이 났다.
이씨는 사고 이튿날인 16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주 선명하게 대포 소리 같은 것이 들렸습니다. 이내 천둥소리라고 생각했지요. 왜냐하면 보스턴 마라톤 당일 날씨가 약간 흐렸거든요. 그래서 천둥이 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라며 사고 당시를 술회했다.
하지만 이씨는 눈앞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순간 “무엇인가 잘못됐구나”라고 생각했다.
테러 현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사이 주변에 있던 경찰관들이 몰려 나와 “모두 서둘러 피하라”고 고함을 쳤지만 그때까지도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당황한 경찰관들의 지시에 따라 이씨는 곁에 있던 한국인 마라토너들과 함께 이들이 전세낸 대형버스 뒤로 가 대피했다.
이씨는 “버스 뒤로 피한 뒤 앞에서 벌어진 참상을 바라보니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고 전했다.
이날 테러로 이씨는 결국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게 됐다. 사고가 나자 경찰이 결승점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대회에서는 결승점을 통과한 직후 기념사진을 찍지 못하게 됐다.
이씨는 “보스턴처럼 평화로운 도시의 축제인 마라톤 대회가 아수라장으로 변할 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며 비통해했다.
미국에서 조그만 레스토랑 등 개인사업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13년째 거르지 않았던 보스턴 마라톤을 앞으로 계속해야 할지가 이씨의 고민거리로 남게 됐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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