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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배경 위에 놓인 두 송이 꽃을 촬영한 흑백사진이 있다. 이 중 하나는 생화지만 나머지는 조화(造花)다. 화려한 색상이 지워진 꽃을 두고 '진짜'를 찾으라 하면 헷갈리기 일쑤다. 좀 더 신중하게 관찰해야 답을 말할 자신이 생긴다. 대형 프로젝트와 설치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전수천(63)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태원동 표갤러리 개인전에 내놓은 꽃 사진 신작 '사물로부터 차이를 읽다'이다. 작가는 "무심하게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가능하면 천천히 바라보고 '관찰'해 확인하고 '차이'를 발견하자는 삶의 태도를 제안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위적인 개념, 사회적 거대담론을 주제로 작업해 온 작가가 '꽃 사진' 개인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쉬운' 작품이다. 그러나 실체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수십 수백 송이 꽃을 배치한 흑백사진 또는 부분 컬러사진인데, 생화인지 조화인지 찾아내기가 어렵다.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현대사회의 속성을 꼬집는 것이니 관심과 관찰의 시간을 투자해야 묘미를 맛볼 수 있다. 2개 층 전시장 중 지하 1층에는 방 하나를 수천 송이 조화로 채운 대형 설치작품 '잃어버린 미로의 파라다이스'가 놓였다. 바닥이 거울이라 꽃들은 곱절 증폭돼 보이고, 향기는 없으나 이미지에 취해 아찔하다. 작가는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를 비롯해 미국ㆍ영국ㆍ중국ㆍ일본 등 세계 무대에서 폭넓게 활동해 왔다. 전시는 11월6일까지. (02)543-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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