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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포커스] 심각해지는 돈맥 경화

예금회전율 20분기 만에 최저… 돈이 너무안돈다<br>기업·개인 투자처 못찾아 부채 줄이는 데만 관심<br>요구불 예금 사상 최대<br>은행은 돈 굴리기 골몰


"돈이라는 게 활발하게 돌아야 은행도 금리차나 수수료 수익이 발생하는데 최근에는 대출도 둔화되고 돈마저 돌지 않아요."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요즘 '돈'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금리를 낮춰도 은행으로 들어오는 돈은 넘쳐나는데 회사채발행 금리가 떨어지면서 우량기업들은 직접 자금을 조달, 대출을 줄이면서 운용이 힘들다. 반면 부실 가능성이 높은 일부 기업이나 개인의 경우 대출을 늘려달라고 하소연하는데 대처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은행에 들어온 돈마저 회전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는 "경기위축,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기업이나 개인이 은행에 돈을 맡길 뿐 인출 등을 통해 활용하는 빈도가 낮아졌다"면서 "돈의 회전이 빠르게 둔화돼 은행으로서도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은행에서의 돈의 회전율이 줄고 있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ㆍ4분기 은행의 예금회전율은 월 평균 3.9회로 지난 2007년 2ㆍ4분기(3.7회) 이후 가장 낮다. 20분기 만에 예금회전율이 최저치를 경신했다. 예금회전율은 은행의 예금지급액을 예금 평균잔액으로 나눈 값으로 회전율이 높으면 소비나 투자 등을 위해 예금 인출이 빈번했다는 뜻이고 낮으면 은행에 돈을 묶어뒀다는 의미다.

시중은행의 자금담당 부장은 "금융시장이 불안하거나 경기가 위축될 때 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20분기 만에 예금회전율이 최저라는 것은 최근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예금회전율 감소는 입출금이 자유로운 당좌예금이나 요구불예금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0년 4ㆍ4분기에 월평균 809.3회를 기록했던 당좌예금의 회전율은 매 분기 떨어지더니 올해 2ㆍ4분기는 521.2회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요구불예금 역시 같은 기간 20.5회에서 18.4회로 감소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세계경기의 둔화, 국내 경기의 침체 양상 등으로 부동산ㆍ주식 등 실물 부문의 투자수요가 줄어 돈이 도는 속도가 느려졌다"며 "요구불예금의 회전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이 투자처를 못 찾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기업도 투자를 늘리지 않고 개인 역시 예금 이외의 투자자산에 돈을 맡기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경기가 위축되자 국민들이 부채를 줄이는 데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돈이 돌지 않는 '돈맥 경화' 현상이 앞으로도 더욱 이어질 수 있어 이에 따른 부작용도 클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은행에만 돈을 예치하고 찾는 횟수가 줄어든다는 것 자체가 '소비감소→생산둔화→투자위축→경기침체'의 고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지주의 전략담당 임원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회전율이 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신호"라면서 "소비위축을 불러와 급기야 경기의 추가침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요구불예금 등 금융계에 쌓이는 예금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예컨대 7월 금융계 전체의 요구불예금 평균잔액은 10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7월 99조원에서 1년 만에 3조원 가까이 늘었다. 수시입출금식 예금 역시 443조원으로 지난해 12월 428조원에서 15조원이나 증가한 상황이다.

시중은행 자금담당 부장은 "수시로 넣고 찾을 수 있는 수시입출금 예금이 금리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늘고만 있다는 것은 고객들이 돈을 묻어 둔 채 인출횟수를 줄이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기업이 회사채발행으로 자금조달 전략을 바꿔 우량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도 제한돼 있는 마당에 은행으로서는 돈이 늘어나는 게 꼭 반가운 일만은 아닌 상황이 돼 버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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