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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동시분양의 경제학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시간이 지나면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제도를 고치기도 하고 아예 폐지하기도 한다. 간혹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나 원인이 바로 그 제도를 폐지하게 만드는 부메랑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정부가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오는 11월부터 폐지하기로 한 동시분양제도가 그렇다. 행정당국 입장에서는 민원을 일괄 처리하니 편리하겠지만 소비자의 아파트 선택권과 주택업체의 청약자율권을 제한한다는 게 폐지 이유다. 여기에는 8ㆍ31 부동산대책을 거치면서 주택시장이 안정돼 개별 분양하더라도 과열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당국의 자신감도 깔려 있다. 지난 89년 수도권 5개 신도시 분양 때 처음으로 도입된 동시분양은 92년 9월부터 서울에서는 통상적인 아파트 청약패턴으로 자리잡았다. 규개위가 이 제도를 ‘규제’로 간주한 데 대해 서울시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시가 행정편의를 위해 마련했다기보다는 주택업체의 분양촉진 전략에 시가 편의를 제공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업계 자율로 마련한 제도가 시간이 흐르면서 행정 지침처럼 굳어진 것뿐이다. 동시분양이 도입됐던 92년 가을 경제상황을 보면 ‘규제 아닌 규제’가 마련된 이유에 수긍이 간다. 그 해는 신도시 개발의 후유증이 나타나던 시기. 91년 9.2% 성장을 정점으로 경기가 하향 곡선을 그렸다. 92년 성장률은 5.4%로 고꾸라졌다. 경기는 하반기로 갈수록 더 나빠졌다. 주가지수 500선이 붕괴되고 주택업계의 줄 도산 징후가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주택업계가 낸 아이디어가 서울판 동시분양. 신도시처럼 한꺼번에 분양물량을 모아서 붐을 일으켜 보자는 심산이다. 그 해 9월28일 14개 아파트 3,427가구를 동시 분양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형 국민주택과 1군(비로열층)에서 일부 미달이 발생했으나 1순위에서 대부분 마감됐다. 이 제도는 곧이어 고양시 화정지구 등 수도권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이로 인해 ‘되는 곳은 잘되고 안되는 곳은 더 안되는’ 양극화 현상이 없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90년대까지는 이 제도에 대한 존폐 시비는 없었다. 정부의 제도 폐지 이면에는 주택업계를 더 어렵게 한다는 주택업계의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분양촉진을 위해 도입한 동시분양 제도가 시간이 흐르면서 분양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사라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동시분양제도가 완전히 없어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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