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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의 골이 깊었던 상반기 소비자들은 철저히 ‘실속’과 ‘가치’를 기준으로 움직였다. 얇아진 지갑 탓에 구매력이 줄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세일행사에만 구매행렬이 이어졌다. 예상대로 저가상품과 소용량 대안제품들은 불황속 알뜰소비 트렌드를 대표하는 제품군으로 자리매김했다. 연초부터 대형할인점에서도 990원짜리 초저가 기획상품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 시작했으며 연이어 기존 제품용량을 절반이나 3분의 1이하로 줄인 소용량 상품들이 매장 진열대를 채웠다. 소비자 상품선택 기준에서 가격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커진 탓이다. 저렴한 상품을 선호하는 현상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소비형태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내 소비자 3,200만명을 조사한 결과, 2007년부터 지난해말까지 2년동안 과거 한 브랜드만을 고집하던 고객 절반이상이 이 기간동안 다른 브랜드도 구매했으며 3분1 정도는 아예 예전에 즐겨 사던 브랜드를 전혀 구입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보도했다. 경기침체 앞에서는 “한번 단골은 영원한 단골”이란 마케팅법칙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소비심리 위축이 지속되면 소매시장에서 가격과 판촉행사는 구매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 하반기에도 이 같은 축소지향적 소비행태가 이어지면서 차별성을 가진 브랜드들도 상황이 크게 개선되기 힘들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들이 다소 나오고 있지만, 기업구조조정 및 임금삭감에 따른 구매력감소가 이제 나타나기 시작했고 투자심리 악화, 원자재 가격 상승, 시장 유동성과잉 등 경제 변수들이 상존하고 있어 소비심리가 급격히 회복될 것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소비위축 속에서도 ‘실속형’소비자들은 늘어나는 추세다. 무조건 싼 것을 찾기보다는 값을 치르더라도 제대로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을 고르는 성향은 더 강해지고 있다. 브랜드의 감성과 합리적 가격 모두 중시하는 이른바 ‘밸류 컨슈머(가치소비자ㆍValue consumer)’가 증가하는 것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심리적 효과를 기대하는 ‘스몰럭셔리(small luxury)’ 트렌드가 상반기 뚜렷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초고가의 명품을 사는 대신 지갑, 벨트 등 동일 브랜드에서 나온 제품을 구입해 자기만족을 극대화하는‘가치형’소비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가치형 소비는 비싼 제품 뿐 아니라 레저ㆍ취미ㆍ휴식관련 제품에서도 볼 수 있다. 실제 국내 대표 할인점인 이마트의 상반기 스포츠관련 상품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가까이 증가했으며 등산용품도 17% 매출신장세를 보였다. 방종관 이마트 팀장은 “상반기 실속과 알뜰소비로 대표되는 소비트렌드 속에서도 레저용품과 디지털기기 등이 높은 매출 신장세를 보였다”며 “이른바 ‘짠돌이’ 트렌드속에서도 쓸 곳에는 확실히 쓰는 합리적 소비가 돋보였다”고 말했다. 합리적ㆍ가치 소비가 증가할수록 브랜드 선택기준도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경기불황으로 사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데 비례해 브랜드의 신뢰도 구매기준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점 커지게 된다. 서울경제가 상반기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은 상품으로 선정한 ‘일류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걸 맞는 기능과 가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혁신적인 상품이라도 초기 수요자에게만 인기를 끈 후 시장의 주류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오랜 기간 소비자들의 평가와 검증을 통해 신뢰를 쌓는 브랜드들은 불황에도 구매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IT(정보기술)관련 기기나 생활용품들도 최근 젊은 소비층들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속 있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제품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불황기에도 웰빙ㆍ친환경 상품에 대한 인기는 변함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천연재료를 사용하거나 자연주의를 표방한 식품ㆍ화장품등을 선택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금융상품도 소비자들이 이미 자산가치 하락 경험을 갖고 있어 막연한 고수익이나 보장을 강조하는 상품보다는 안정적 수익과 소비자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상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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