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 고액 연봉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수천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미국 정부가 보수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부실 은행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채권부문의 실력자를 모시기 위해 2년 계약을 맺고 첫 해 6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 씨티그룹은 앞서 브로커리지 전문가를 200만 달러를 제시하며 영입을 추진하다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한 바 있다.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역시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던 2007년보다 더 많은 보수를 지불키로 했다. 부실 은행들은 골드만삭스가 지난 2분기 깜짝 실적을 올리면서 사상 최대의 보너스 잔치를 예고하자 '골드만 따라하기'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부문의 인재를 모시기 위해 앞 다퉈 고액 연봉을 제시한다. 공적자금을 받은 이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경쟁력 강화'와 '주주 이익 극대화'다. JP모건에서 17년간 근무하던 채권 전문가를 첫 해 600만 달러를 주기로 하고 영입한 BoA는 이에 대해 "우리는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실적에 따라 보수를 차등해왔다. 시장에서 요구되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거나 유출을 막을 것이다"고 밝혔다. 씨티그룹 역시 "우리의 성공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고급 인력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월가에서 고액 연봉 관행이 되살아 나는 것에 대해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시카고에서 일하는 컨설컨트인 마크 레일리는 "정부가 이들 은행이 망하지 않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직원들에게 고액의 보수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금융위기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수혈 받고 사실상 국유화됐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BoA는 미국 정부로부터 450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스트레스테스트에서 339억 달러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씨티그룹 역시 미 재무부에 36%에 해당하는 우선주를 넘겼고, 영국 2위 은행인 RBS 역시 지분 70%를 영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정부는 '세금 낭비'라는 비난을 의식, 공적자금 수혜 은행들이 임직원이 고액의 연봉을 챙기는 것을 막고 있다. 씨티그룹과 BoA는 연봉 상위 25명의 총 보수를 전체 임직원 보수의 3분의 1이하로 제한하고 상위 100명에 대해서도 단기 성과에 따른 보너스 지급을 제한하는 등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RBS 역시 올해 보너스 지급 대상을 지난해보다 90% 축소하고 임원급에 대해서는 보수를 동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규제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냈다. BoA의 경우 보수 제한이 지난해 상위 100위 고액 연봉자에게만 해당한다는 점을 악용, 새로 뽑는 인재에 대해서는 첫 해 연봉을 대폭 올리는 방법으로 이를 피하고 있다. WSJ은 골드만삭스가 깜짝 실적을 기록하면서 직원들에게 사상 최고 연봉을 지급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월가의 고액 연봉 지급 관행이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실 은행들은 반대 여론과 의회의 감시망을 피하면서 고액 연봉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사상 최고 순이익을 달성, 직원 1명당 평균 70~90만 달러의 보수를 지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은 지난 6월 1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전액을 상환, 정부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다. 구제 금융을 모두 갚은 모건스탠리 역시 올해 직원 1인당 연봉이 2007년 수준(34만 달러에)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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