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거래소가 석유현물거래소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경쟁매매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석유제품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매매 방식은 주식투자자들이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주식매매거래를 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유소와 대리점은 시장에 공급되는 석유제품의 가격을 비교해 가장 싼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석유현물의 특성상 매매체결 후 운송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전국의 유류저장소를 중심으로 15개 정도의 권역별로 나눠 시장을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석유전자상거래가 정착돼 안정되면 몇몇 정유사가 시장을 과점하는데서 발생하는 휘발유나 경유 등 석유제품의 가격 왜곡현상이 상당부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크게 올랐지만 정작 유가가 하락할 때는 국내 가격 인하가 더디게 진행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정유사들이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높은 마진을 남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스오일 등이 시장점유율을 유지키로 담합했다며 4,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KRX는 석유현물거래소가 정착되면 석유선물시장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이 국제 유가의 변동성에 취약한 만큼 시장 변화에 대응해 헤지(hedge) 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KRX 관계자는 “석유선물시장이 개설되면 변동성 큰 국제 유가에 대비해 석유가격에 대한 헤지가 가능해 우리나라 석유시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현물거래소의 성패는 무엇보다 정유사들의 시장참여 여부에 달려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대형 정유사의 시장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세액공제안을 마련해 이미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지식경제부가 이번에 제출한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KRX의 전자상거래사이트를 통해 석유제품을 공급하면 공급가액의 0.3%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줄 방침이다.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세제혜택을 줘 초기 시장 정착을 돕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막상 석유전자상거래 도입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제혜택으로 정유사들을 끌어들이기엔 인센티브 매력이 떨어진다”며 “기존 판매망이 있는데 굳이 거래수수료를 물면서 전자상거래에 참여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물시장에 이어 선물시장이 도입될 경우 투기세력이 들어와 오히려 가격이 올라가는 역효과가 있을 수도 있어 가격 인하 효과도 기대만큼 크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석유현물거래소는 경쟁시스템 도입하고 거래 투명성을 높여 가격인하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전제하고 “다만 외부 충격에 약한 국내 시장의 특성상 국제 유가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오히려 가격 등락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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