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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문화산책] '천고마비와 등화가친'

김진동(전 언론인)

[토요 문화산책] '천고마비와 등화가친' 김진동(전 언론인) 김진동(전 언론인)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백로(白露)를 지나 추분(秋分)으로 가는 길목이라 하늘은 한층 높아지고 코끝에 닿는 바람이 청량하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또한 가을은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것과 등불 밑에서 책을 읽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쉽게 헤아릴 길은 없다. 가을은 선선하고 청명해 운동이나 여행 등 놀기 좋은 철이어서 책과 멀어지기 십상인데 그래도 독서의 계절이라고 우긴다. 아마도 놀기에 좋은 철이니 마냥 놀지만 말고 책도 읽으라는 삶의 지혜를 담은 권고일 것으로 짐작된다. 천고마비와 등화가친은 동의어처럼 한 묶음이 돼 가을의 다른 이름으로 정착된 지 오래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안중근의 금언을 충분히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백이전(伯夷傳)을 11만3,000번이나 읽는 등 1만번 이상 읽은 책이 36권이나 되는 김득신(1604~1684) 같은 독서광은 되지 못하더라도 이 가을에 독서를 통해 얻는 행복과 풍요를 놓칠 수는 없다. 가을은 역시 여행의 철이다. 책이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 책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첫 기착지는 강남의 교보문고. 그곳은 근ㆍ신간으로는 없는 책이 없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독서실이다. 책이 내뿜는 향기에 취하고 사람들이 쏟아내는 독서 열기에 흥건히 젖어 덩달아 행복해진다. 책을 사러 가기도 하지만 점심시간을 쪼개거나 만남을 기다리는 짬에 책 한 권을 뚝딱 독파하는 ‘도둑 독서’의 낙원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집을 뒤적이는 것만으로도 한나절쯤은 아까울 게 없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두 번째 기착지는 강릉시립도서관. 거기에는 “시민의 문화향상과 독서 해갈을 위해 애장도서 전부를 애향의 뜻을 담아 기증한다”는 이 고장 출신 원로 언론인의 기증서가 걸려 있다. 서가의 책이 성글어서 ‘가난해 보인다’던 이 도서관은 또 이 고장 출신 극작가의 기증도서가 더해져 자못 풍성해 보인다. 도서관은 기증자의 이름을 붙인 서가를 만들어 답례했다. 책 사랑과 고향 사랑이 물씬 풍기는, 전국으로 전염됐으면 좋을 ‘감동 사건’이라 할 만하다. 아무리 전자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서 책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책의 가치는 무겁고 도서관과 독서의 유익함은 깎아내릴 수 없다. 손끝에 감지되는 종이의 훈기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번 가을은 어느 해보다 더 산뜻하게 출발한 것 같다. 입력시간 : 2004-09-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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