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well being)’ 열풍 vs 이태백ㆍ삼팔선ㆍ사오정.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2004년 대한민국의 양면적 모습이다. 한쪽에선 삶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한창인데 다른 한쪽에선 삶의 질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이다. 70년대판 ‘잘 살아보세’는 경제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 위한 구호였지만 2000년대판 ‘잘 살아보세’는 판이하게 다른 종착역을 향하는 구호인 것 처럼 보인다. ‘56세까지 회사에 남아있으면 도둑’이라는 뜻의 신조어 ‘오륙도’가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이 지난해 3월. 이어 ‘사오정(45세 정년)’ ‘삼팔선(38세면 명예퇴직을 선택한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까지 차례로 등장해 폭 넓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까지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여러 경기지표는 꾸준히 호전 중이지만 고용은 상상을 못할 만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 정부, 재계, 노동계를 아우르는 최대의 국가적 현안이 됐고 날마다 일자리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정부가 발표한 정책만 모아도 늘어나야 할 일자리 수는 200만여개에 달해 실업률이 1%대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주요 연구기관들은 이제 한국사회도 ‘고용 없는 성장’의 현실화가 도래했다고 보고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청년실업 5년간은 개선 어렵다’는 보고서를 통해 구직자는 갈수록 늘어가는데 일자리는 늘지 않는 수급 불균형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기업의 고용창출 능력이 계속 감소하고 중소기업의 고용기여도가 늘고 있지만 아직 중소기업들의 기반은 취약하기만 하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경직성, 고임금ㆍ저생산성 구조 등이 맞물려 최악의 고용대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지난 90년초와 2000년대초 미국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소비와 설비투자 등이 호조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업률과 일자리 감소로 미국은 큰 후유증을 겪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90년대초 미국의 고용부진과 비슷한 양상이어서 한층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은 제조업의 고용부진이 서비스업 등 여타 부문의 호조에 흡수되고 있어 확실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이에 비해 한국은 정보기술(IT) 등 일부 산업의 비중만 계속 커지는 등 아직 경제 시스템이 다양화돼 있지 못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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