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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농민
입력2003-12-10 00:00:00
수정
2003.12.10 00:00:00
전통적인 산업정책에서는 종종 생산을 늘리는 것이 곧 소득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인식된다. 생산증대가 국가적으로나 개인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 깔려 있다. 그러나 개방혁명으로 전세계적으로 일물일가법칙의 압력이 거세지는 세계화시대에 이 같은 논리는 맞을 때보다 틀릴 경우가 더 많다. 더구나 수요자의 기호변화와 함께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본전도 못 건지는 생산활동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생산량이 늘어나도 가격이 하락하면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고 적자가 누적돼 생산자는 물론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농업도 비슷한 데가 있어 보인다.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10년 동안 농업 부문에 투자된 정책자금은 농촌개발특별자금을 비롯해 80조원이 넘는다. 이 같은 투ㆍ융자 확충에 힘입어 농업 부문의 고정자본은 연평균 9% 이상 증가했고 생산으로 따져 농업부문은 연평균 2.3%의 실질성장을 기록했다.
농업투자의 패러독스
문제는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고 농업생산이 늘었지만 농민들의 소득이 높아진 흔적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94년 이후 국내 농업생산이 늘어나고 농산물 수입증대 등으로 공급이 늘어나면서 농산물의 실질가격은 연평균 1% 정도 하락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농업생산에 투입되는 농업용품 가격이 올라 농가교역 조건도 악화됐다. 결국 막대한 농업지원으로 농업생산은 늘었지만 실제 농민들에게는 실익이 없는 것이다. 도농간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둘러싸고 농민의 불만과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농민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농업생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쌀의 과잉생산으로 정부의 부담도 크게 늘어났다.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한 논농사직불제도 그중의 하나다. 투자확대를 통해 농업생산이 늘었지만 생산자인 농민의 소득은 오르지 않고 농가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농정에 대한 불신도 함께 커졌다. 생산 위주 농업투자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지난 11월11일 농민의 날에 농림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119조원을 농업 부문에 투자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연간 농업생산이 20조원쯤 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절반 정도가 농업 부문에 투입되는 셈이다. 개방혁명으로 위기에 몰린 농업과 농민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이뤄진 대대적인 농업투자에 대한 재판이 돼서는 곤란하다. 돈을 쏟아부으면서 생산자인 농민은 되레 가난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농민 소득 중심의 농정 펴야
그러자면 무엇보다 농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제 농정의 목표는 농업생산 증대가 아니라 농민의 소득이어야 한다. 농업 자체가 아니라 농민과 농촌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다급해진 정부는 경쟁력을 높힌다면서 농업에 막대한 자금을 퍼부었지만 농민들은 빚더미에 올라앉고 농기계를 비롯한 농업자재회사들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농민은 농민대로 어렵고 정부는 정부대로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은 검정되지 않은 식량안보 논리등을 바탕으로 수요가 줄어드는데도 쌀을 비롯해 많은 농산물의 생산장려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와 함께 일물일가의 법칙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생산량 증대 위주의 농업정책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농업생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농민과 농촌의 발전을 위한 농정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막대한 농업투자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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