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노후 또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후 준비의 핵심이 넉넉한 자금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노후에 건강을 유지한다고 해도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15개 시도 30~69세 남녀 985명을 대상으로 100세 시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운 응답자가 축복이 아니라고 답했다. 축복이라는 응답자는 26.7%에 불과했다. 축복이 아니라고 응답한 사람들은 그 이유로 불충분한 경제력을 꼽았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 수명이 늘어나는 게 반가울 리 없다. 최근 선보인 연금복권이 선풍적 인기를 끄는 이유도 노후준비가 제대로 안 된 고령자들의 불안심리 덕이다. 은퇴 전과 다른 삶의 기준 필요 한때 일부 민간경제연구소들이 금융자산 10억원을 적절한 노후자금 규모로 제시했다. 은퇴 뒤에도 은퇴 이전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노후생활 기준은 평범하지 않다. 1년에 한번 해외여행을 떠나고 한 달에 두 번 골프를 치고 가사도우미를 쓰는 등 서민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10억원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생직장은 사라진 지 오래고 30년 공부해서 직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대부분 50대 중반에 퇴사하는 게 현실이다. 10억원은 평균 월급 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55세까지 다니면서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다. 한 푼도 쓰지 않고 어떻게 산단 말인가. 다행히 국민연금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기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기초생활은 해나갈 수 있다. 최근에는 퇴직연금이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됐다. 소규모의 개인연금 저축 등을 합하면 그럭저럭 노후를 지낼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금융자산 10억원이라는 불가능한 현실을 극복하려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기 일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50대 중반에 은퇴한다면 앞으로 살아갈 30년 이상이 얼마나 지루한 일이 될지 생각해보자. 과거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환갑만 지나면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는 노인이 됐다. 그러나 요즘은 자식들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얻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꾸려나가려면 신체와 정신 건강을 챙겨야 한다. 신체가 건강하지 못하면 일도 할 수 없다. 정신 건강을 지키는 것도 신체 건강 못지않게 중요하다. 노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쉽고 외로움에 시달리는 환경에 놓이기 쉽다. 그러다 보니 이들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빠르게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자살률을 낮추려면 은퇴자들이 은퇴 이전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가져야 한다. 노후 위해 새로운 일 찾아야 은퇴 이후에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도 달라진다. 달라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창 잘나가던 때의 추억만 되씹으며 현재의 생활에 불만을 갖는다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한 분이 직업훈련원에서 자동차 정비교육을 받은 사례가 있다.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하면 연금 규모도 국민연금보다 훨씬 많아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지만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춘 것이다. 일 없이 지내는 노후보다 새로운 일을 갖고 노후를 보내려는 결정은 바람직하다. 일을 갖는다면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도 줄어든다. 30년 공부하고 20여년의 직장생활을 끝으로 뒷방에 물러나 있던 과거 우리나라의 노인들과 달리 이제는 새로운 일을 찾아 남은 30여년을 인생의 2막으로 삼아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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