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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키리옌코 비서의 작은 실수

뉴욕=서정명특파원 vicsjm@sed.co.kr

지난 98년 5월 로런스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이 러시아를 찾았다. 아시아 금융위기에 따른 러시아의 금융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후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총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키리옌코 총리의 비서는 미국의 부장관이 러시아의 총리를 만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고 스스로 판단해 면담제의에 퇴짜를 놓았다. 서머스가 키리옌코를 만나지도 못했다는 소식은 뉴욕 월가에 삽시간에 퍼졌다. 월가 투자자들은 러시아가 대외부채를 갚지 못할 것이며 러시아 정부와 서방세계 사이에 균열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했다. 투자은행과 헤지펀드ㆍ뮤추얼펀드 등 월가 투자자들이 일시에 루블화를 달러로 바꿔 러시아를 빠져나가면서 러시아 금융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국제자본의 중심지인 월가와의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긴 에피소드치고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룬 셈이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관료와 정책 입안자들이 투자유치와 국가설명회(IR)를 위해 자주 월가를 방문한다. 저팬 소사이어티에서 열리는 일본경제 설명회에 갈 때마다 ‘참으로 치밀하게 준비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 갖는다. 발표자로 나선 일본의 경제관료들은 통역 없이 유머를 섞어가면서 월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혹시 설명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옆에 앉은 실무진에게 자세한 내용을 다시 설명하도록 한다. 월가와의 대화에 오해가 없고 깔끔한 설명회를 갖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많은 경제관료와 국회의원들이 맨해튼을 찾아 투자유치와 한미간 우호증진을 알린다. 중요한 것은 단지 그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제대로 전달했는지 여부다. 대부분 통역으로 월가와의 대화를 나누는데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관료나 정치인들은 월가 투자자들의 질문에 동문서답하는 경우가 있고 발표자의 생각과 의중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예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월가와의 만남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조마조마한 대화’가 되는 꼴이다. 일국의 경제관료와 월가와의 만남은 실시간으로 블롬버그ㆍ로이터통신ㆍ다우존스 등을 통해 전세계에 전해지고 이는 바로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도 많은 경제관료와 국회의원들이 맨해튼을 찾을 예정이다. 키리옌코 비서처럼 어리석은 실수도 금물이지만 월가에 와서 기념사진이나 찍고 ‘한 건 했다’는 식의 설명회가 되어서는 안되겠기에 미리 당부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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