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의결권과 주주권 행사를 강화한다는 방안이 무산됐다.
'연금 사회주의'나 마찬가지라는 재계의 강력한 반대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의 발목을 잡았다.
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해당 투자기업의 사외이사 자격요건 제시' '국민연금 책임투자 도입 방안 수립' 등 원론적 차원에서의 방안만이 제시된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종합운용계획안이 심의, 의결됐다. 하지만 이날 통과된 계획안에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필요한 구체적 수단이 포함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 10월부터 1년간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와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를 구성해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기금운용 선진화 방안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는 투자기업에 대한 의결권 100% 행사, 지배구조가 취약한 투자기업 중점 감시대상 지정, 주주대표소송제도 도입 등의 방안마련을 권고해왔다.
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를 중심으로 경영권 간섭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며 거센 반발이 일어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 시장 감시자로서의 역할론을 강조하면서 의결권 강화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였지만 이번 정부안에는 구체적인 수단들을 모두 제외시켰다.
이형운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 과장은 "중점 감시대상 기업 선정과 같은 지배구조 개선 등과 관련해 반대 의견도 많았고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원회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정부안에 대해 환영하는 모습이다. 올 초부터 국민연금이 최태원 SK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하는 등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면서 재계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들어 국민연금은 기업 주총에서 260건의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는 올해 주총 전체 의안의 12%가 넘는 것이다.
송원근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소 실장은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등 경제가 어려운 국면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또 국민연금의 성격상 여러 가지 이익집단의 압력을 받아 주주권 행사가 가능한 만큼 이번에 발표한 정부안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국내 채권 위주의 기금 포트폴리오를 해외자산과 대체투자 확대 등으로 다변화하기로 했다.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비중이 2%임에도 불구하고 기금의 80% 이상(327조원)이 국내자산에 투자되고 있어 자칫 국민연금의 행보에 따라 국내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통적 자산군과 상관관계가 낮고 저성장 상황에서 양호한 성과를 보이는 신규 자산군을 기금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국내사 헤지펀드 등은 아직 운용기간이 짧아 편입대상으로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또 국민연금은 해외투자 확대 등 효율적인 기금운용을 위해 전문인력 확충 등 기금운용 인프라도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이에 따라 2013년 현재 210명인 기금운용 인력을 2014년 290명, 2015년 313명, 2016년 322명, 2017년 331명 등으로 매년 충원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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