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22일 금융사업 전면철수를 포함한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게 된 것은 금융 당국의 압박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해운·물류·산업기계·대북사업 등 4개 부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현대그룹의 부활을 모색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번 자구책 발표로 현대그룹 유동성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대 핵심 부문으로 성장동력 재편=현대그룹은 현대증권과 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 등 금융 계열사의 전면 매각으로 사업구조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기존 현대그룹의 한 축을 담당해오던 금융업을 정리하고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을 비롯해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엘리베이터, 대북사업을 진행 중인 현대아산에 집중해 새롭게 도약할 계획이다. 이번 구조조정안을 두고 현대그룹 내에서도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열사를 매각하더라도 최근 3년간 시황이 어려웠지만 현대그룹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모태 사업인 현대상선과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꿈이었던 현대아산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매각 대상으로 물망에 오르던 현대종합연수원이 매각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현대그룹의 도약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그룹은 그동안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실적 개선에 그룹역량을 집중해왔다. 글로벌 해운 연합체인 'G6 얼라이언스'에 가입한 것을 비롯해 저속운항, 선박연료 효율성 향상 등을 통한 연료비 절감으로 비용구조를 개선해왔다. 지난 10월 말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와 손익 극대화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룹으로서는 핵심사업의 한 축인 금융 부문을 매각하는 고통이 있지만 이번 자구계획으로 그룹의 유동성 문제 해결과 함께 해운업 등 핵심 부문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지속성장의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본다"며 "향후 현대그룹은 금융권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시장에서 신뢰받는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그동안 금융권은 고강도 자구책 마련을 끊임없이 압박했지만 현대그룹은 다소 미온적이었다. 예컨대 현대그룹은 현대상선만 내년까지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 총 8,200억원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돌아오지만 6,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해둬 내년 상반기까지는 유동성 확보에 문제가 없으므로 자산매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와 현대로지스틱스의 기업공개(IPO)가 무산된데다 최근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금융 당국의 지속적인 요구에 결국 고강도 자구책을 내놓게 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현대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해운업계 1위 한진해운이 지난 19일 2조원 규모의 고강도 유동성 확보 방안을 내놓자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자금유동성 우려 대폭 해소=일단 현대그룹의 선제적 자구안으로 최근 시장에서 제기돼온 현대그룹의 유동성 문제가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에 내놓은 자구안이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돼오던 현대증권 매각에 더해 현대자산운용과 현대저축은행 등 금융 3개 계열사를 모두 매각하는 '금융업 철수'라는 초강수인 점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2014년 상반기까지 현금보유가 충분한 상황이지만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선제적이고 자발적인 고강도 자구안을 마련했다"며 "현대그룹의 유동성 문제 해결과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현대그룹의 자구안이 계획대로 실현되면 현대그룹은 이번에 확보된 유동성으로 1조3,000억원 정도의 부채를 상환하게 된다. 현대그룹은 2013년 3·4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993%에 이르는 현대상선을 필두로 현대엘리베이터·현대로지스틱스 등 주요 3개사의 부채비율이 3·4분기 말 기준 493%에 이른다. 현대그룹은 이번 조치로 부채비율을 오는 2014년까지 200% 후반대로 대폭 낮추고 2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한편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올 한 해 현대건설 인수전에 따른 자금 2,388억원과 컨테이너선 매각을 통해 마련한 1,800억여원, 교환사채발행과 유상증자 등으로 1조원 이상의 금액을 마련해왔지만 금융 당국은 이 정도 조치로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잠재우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판단해왔다.
이에 현대그룹은 금융 당국의 요구에 따라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금융계열사 등의 자산을 이전시키고 세부적인 매각방안과 절차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권과 협의해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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