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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별 3000~5000명 달해… 무임승차 해소땐 순익 10% 올라

금융사 '프리라이더' 솎아낸다<br>최근 4년새 연봉 30% 올라도 1인당 생산성 10% 상승 그쳐<br>"퇴출 더 미루기 어렵다" 판단<br>노조 반발 벌집 건드릴라… 구조조정 묘책 짜내기 고심


시중은행의 임원으로 재직하다 퇴임한 A씨는 가끔씩 은행 동기들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말단 행원 시절부터 동기들보다 실적이 우수해 승진도 빨랐고 동기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직급까지 올랐던 A씨. 하지만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후회만 남는다고 했다. 일찌감치 승진을 포기하고 짬짬이 땅을 보러 다니며 재테크에 올인한 A씨의 동기는 퇴직 이후 수십억원대의 자산가가 돼 있었다.

반면 은행 재직 시절 사비를 털어가며 거래처와 부하직원들 관리를 했던 A씨는 아직도 다 상환하지 못한 주택담보대출과 얼마간의 연금이 남은 전부였다. A씨는 "은행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는 게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차피 똑같은 월급쟁이인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시중은행에서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은행 특유의 성과급 체계와 정년이 보장되는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프리라이더를 양산했다.

성과에 따라 철저하게 평가 받고 낙오자가 결정되는 일반 기업체와 달리 은행은 성과급에 큰 차이가 없다. 승진이 임박한 직원들에게 실적을 몰아주는 관행도 일반적이었다. 일을 적게 하든 많이 하든 비슷한 월급을 받아가고 55~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곳이 바로 시중은행이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적게는 1만5,000명에서 많게는 2만5,000명의 인력을 거느리고 있는 대형 시중은행에서 전체 인력의 20%가량은 프리라이더로 분류되고 있다. 은행별로 3,000명에서 5,000명의 인력이 승진을 포기한 채 월급만 받아가고 있는 셈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정년을 앞두고 있는 점도 은행들의 전략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베이비부머들은 현재 퇴직을 10년 안팎 앞두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프리라이더 퇴출=시중은행들이 최근 프리라이더 퇴출작업에 착수하게 된 배경에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올 상반기 STX그룹에 대한 구조조정 및 저금리 등으로 금융회사들이 반토막 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3ㆍ4분기 실적이 다소 회복 추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올해 말까지 전년도 수준의 실적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력 생산성에 대한 개선 없이는 실적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중은행 경영자들의 판단이다. 특히 시중은행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최근 4년간 연봉이 30% 넘게 증가했지만 인당 생산성은 10% 상승하는 데 그쳤다. '고연봉의 대명사'인 은행원들이 정작 월급을 받아가는 만큼 밥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체 인력의 20%에 해당하는 프리라이더 문제가 해결된다면 순익이 10% 가까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며 "민감한 사안이라 섣불리 손대지 못했지만 프리라이더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계상황까지 왔다"고 밝혔다.

◇'벌집 건드릴라'…쉽지 않은 프리라이더 해결법=프리라이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뾰족한 방책이 없다는 사실도 딜레마다. 기존에도 명예퇴직을 앞두고 비공식 채널을 통해 프리라이더에게 명퇴를 종용해왔지만 정작 능력 있는 직원들만 퇴직금을 두둑이 챙기고 경쟁사로 이직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특히 일자리 창출 등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주요 금융회사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과거 일부 은행들이 저성과자들을 외부 판촉활동에 투입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사례도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더라"며 "불완전판매로 고객에게 민원이 접수되거나 외부에 나가 은행 이미지를 해치는 사례도 발생해 관련 제도를 없앴다"고 귀띔했다.

또 자칫 노조와 첨예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국민은행은 2011년 1월 저성과자들 약 400여명을 후선에 배치하는 '성과추진본부제도'를 도입했다가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1년 만에 제도를 폐기처분했다.

노사 합의를 통해 저성과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영업추진단을 운영하는 농협은행도 노조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실제 저성과자 규모는 현재 영업추진단에 투입한 숫자(22명)보다 훨씬 많지만 노조가 상시 구조조정으로 인식할 것을 우려해 최소 수준으로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은행에서도 강력한 성과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고위임원은 "선진국의 금융사와 같은 인센티브 체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정년이나 근무방식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일부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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