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 대물림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직업군이 있다. 군인·교사·공무원 등이 대표적이다. 군인 아버지의 군인 아들, 부모가 모두 교사인데 딸도 교사인 가족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은행원은 금융산업에서 대표적인 대물림 직업이다. 은행원 커플도 보편화 돼 있고 대를 이은 은행원 가족도 많다.
최근 조용병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이 신한은행장으로 내정됐다. 조 사장의 은행장 승진이 최대 관심사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족 이야기도 관심을 끌었다. 조 내정자는 최근 경쟁자인 KB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선출돼 화제를 모았던 최영휘 전 신한금융 사장의 조카사위다. 한 집안에서 리딩뱅크의 은행장과 지주사 사장이 동시에 배출됐다.
전·현직 은행장들 중에서도 은행원 패밀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의 부친은 상업은행 임원 출신이다. 이순우 전 우리금융 회장은 권 행장 취임 직후 통화에서 권 행장 아버지와의 상업은행 인연을 떠올리며 덕담을 전하기도 했다. 반대로 이순우 전 회장의 딸은 기업은행 행원으로 근무하는 묘한 인연이 있다.
신한은행은 역대 은행장 대부분이 은행원 가족을 이루고 있다. 라응찬 전 회장, 신상훈 전 사장, 이백순 전 행장, 한동우 회장, 서진원 행장의 공통점은 자녀들 모두 신한은행에 입행했다는 점이다. 이 중 한 회장의 차남, 이 전 행장의 딸, 서 전 행장의 아들은 아직 은행을 다니고 있다. 서 전 행장은 지난해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은행원 며느리도 봤다.
다른 은행들의 모습도 비슷하다. 우리은행의 경우 강원 전 우리카드 사장과 김병효 우리PE 사장의 자녀들이 우리은행에서 근무하며 최기의 전 KB국민카드 사장, 박인병 전 KB부동산신탁 사장 등도 자녀들이 은행원이다. 이경렬 전 IBK연금보험 사장과 박진욱 전 기업은행 부행장(현 유암코 감사)도 은행원 가족을 이루고 있다.
직장으로서 은행은 보수적이고 안정적이라는 특색을 갖고 있다. 이런 직업일 수록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하고 그 때문에 가업승계 가능성이 높다. 군인과 교사·공무원 자녀들이 아버지나 어머니 직업을 잇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은행은 보수성 외에 연봉 수준이 높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은행은 또 업무 강도가 높아 자유시간을 갖기 어려운 점도 은행원 가족 탄생이 많은 이유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행원 커플이 많아 이를 비유하는 은어까지 생겼다. 같은 은행 직원끼리 맺어진 커플은 '대체방'으로 불린다. 현금을 주고받지 않고 계좌로만 이체되는 거래(대체)에서 연유했다. '교환방'은 각각 다른 은행 직원들 간의 결혼을 의미한다. 과거 은행들이 모여 서로의 수표를 '교환'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반면 은행원과 고객 사이에 맺어진 커플을 '출납방'이라 부른다. 명세서에 도장을 찍는 행위를 출납방이라 하는데 고객을 응대하면서, 즉 출납방을 찍으면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의미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라는 직장이 주는 안정감이 직업 대물림의 근간"이라며 "은행의 장점은 비단 행원뿐만이 아니라 고객들도 공감하는 것이어서 은행원 패밀리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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