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수조원대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9년에 걸친 추적 조사로 흡연과 건강과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흡연에 따른 진료비 규모’를 확보해서다.
건보공단은 27일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연세대학교 국민건강증진연구소와 함께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한 흡연의 건강영향 분석ㆍ의료비 부담’을 주제로 건강보장정책세미나를 열렀다.
발제를 맡은 지선하 연세대 교수는 1992~1995년 공단 일반검진을 받은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등 130만명을 대상으로 2011년 12월까지 19년간 흡연과 연계한 질병 발생 추적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대상 가운데 암이나 심ㆍ뇌혈관질환에 걸린 사람들을 흡연여부로 분류한 결과 남성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후두암 발생위험도가 6.5배 높았고 폐암(4.6배), 식도암(3.6배)에 걸릴 가능성도 큰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은 후두암 5.5배, 췌장암 3.6배, 결장암은 2.9배였다
특히 흡연에 따른 질환 관련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1년 한 해 동안에만 1조6,91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전체 진료비(46조원)의 3.7%에 해당한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용을 분석해 내놓자 곧바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가능성이 제기됐다. 담배 때문에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 지출이 커졌으니 이를 담배회사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미화 변호사는 “객관적인 국내 자료가 처음 나온 만큼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의료비 배상 절차에 돌입할 여건이 마련됐다”며 “재정상 어려움을 겪는 건보공단이 소송에 나서지 않을 경우 오히려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은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분을 국민들이 떠안아온 만큼 공단이 가입자(국민)들의 대리인으로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혀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제 소송전으로 발전할 경우 배상 규모는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담배회사의 과실을 얼마나 입증할 수 있느냐가 실제 승패를 판가름할 것으로 분석된다. 담배회사에 대해 제조상 결함이나 중독성 첨가물 투여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입증이 쉽지 않아서다. 정 변호사는 “흡연이 특정 질병과 개인에 어떤 피해를 줬는지도 밝혀내 보충해야 한다”며 “자본력이 있는 공공기관이 구체적인 의료비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할 경우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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