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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친구...우리 혼자 사나?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식샤를 합시다’‘상속자들’‘셀카’ 등을 통해서 본 ‘혼자 놀기’


우리는 ‘혼자’라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좀더 정확하게는 혼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혼자 밥을 먹을까 두렵고, 혼자 특이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고, 혼자 다른 생각을 할까봐도 두려워한다.

개성이 개인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획일화된 프레임에 맞추는 것은 자아를 소외시키는 일이라고 교과서에서는 배웠지만 혼자 특이하다가는 모난 돌이 정 맞는 일을 당하기 십상이다. 모난 돌에 정 맞는 사회생활에 치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되고 만다. 어떤 누구도 모든 상황에서 누군가와 함께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혼자 노는 미국인 담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나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혼자인 우리는 안도하거나 그 쓸쓸함에 공감한다.

기자는 ‘혼자’라는 상태의 쓸쓸함을 그림으로는 처음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만났다. ‘혼자 노는 사람’을 처음 본 그림이다. 호퍼의 그림에는 등장인물이 대게 한 명이며 여러 명이라 해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각자의 정면을 보고 있고, 그 모습은 다른 이에게는 뒤통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등장인물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소통하지 않는다.

호퍼의 그림 13점이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영화 촬영 세트 모두가 호퍼의 그림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영화의 등장인물은 마치 호퍼 그림 속의 인물처럼 보인다. 그림 속 여자가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셜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건축가인 구스타보 도이치는 호퍼의 그림을 세트로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호퍼의 오리지널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을 찾아 다녔고 컬러 차트를 동원해 영화의 색을 정해가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조명은 엑스트라쯤으로 여겨지겠지만 배우의 얼굴과 몸의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이자 분위기를 연출하는 분위기 메이커(?)이다. 조명이 비춰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피부가 아니라 피부 안에 있는 사람의 뼈대와 골격이다. 그래서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서 얼굴의 윤곽이 달라질 수 있다. 구스타보 도이치 감독이 고민했던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배우들의 고독한 얼굴과 따뜻함과 차가움 그리고 빛과 그림자가 정확하게 표현되기 위한 고민 말이다. 감독의 고민의 결과는 훌륭했다. 영화인 듯 애니메이션인 듯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셜리는 뼈 속까지 충분히 고독하고 쓸쓸해 보였으며, 그를 둘러싼 분위기 역시 따뜻함과 차가움 그리고 빛과 그림자로 셜리의 상태가 정확하게 표현됐다.

◇혼자 놀았던 시인 에밀리 디킨슨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셜리는 에밀리 디킨슨의 책을 읽는다. 영화에서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중요한데 그렇다면 감독이 전하는 언어적 메시지는 에밀리 디킨슨일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1830.12.10 ~ 1886.5.15)은 미국의 천재 시인이자 극단적인 은둔자로 알려졌다. 어떤 이유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그 어떤 이유로 인해 말년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예로 조카들이 그를 방문했을 때조차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 조카들을 위해 구운 쿠키를 바구니에 넣고 줄을 달아 자신의 2층 방에서 아래층으로 내려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그가 시인이 된 것도 그가 죽고 나서였다. 매일 한 편씩 쓴 시가 그 후에 출판되었기 때문. ‘혼자’인 감성으로 쓴 그의 시에는 제목이 없다.



◇셀카로 혼자 놀기

20세기 초 ‘혼자인 사람’을 에드워드 호퍼가 그렸다면 21세기에 ‘혼자 노는 사람’은 스스로가 자기 마음대로 그려낸다. 셀카로 말이다. 셀카의 주인공 역시 한 명이 경우가 많다. 친구들 서넛만 모여도 셀카에 다 담기는 어렵다. 같이 찍을 사람이 많아서 셀카를 혼자만 찍는 것은 아닐 터인데 유독 셀카에는 나 자신 ‘셀프’밖에 없다. 셀카 앞에서 혼자가되면 내가 되고 싶은 그 ‘워너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 모양도, 눈의 크기도, 현재의 상태도 내 마음대로 꾸밀 수가 있는 것이다. 진중권이 ‘셀카질’을 나르시시즘이라고 표현했듯이 셀카 앞에서 ‘혼자 노는’ 우리는 혼자만의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고 싶고 되고 싶고 보이고 싶은 것들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욕구들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그것이 외모에 대한 욕망이든 물질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욕망이든 사회적 시선에 대한 욕망이든 말이다. 혼자 찍고 혼자 보고 남에게 보여줬다가는 “너가 아니잖아”라는 야유를 받는 ‘셀카질’ 우리는 멈출 수 있을까? 사실 멈출 필요는 없다. ‘셀카질’이 나르시시즘이든 혼자 놀기의 ‘진상’ 전형이든 혼자 보내는 순간 스스로는 셀카로 ‘순식간’은 행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순식간이라도 행복을 느껴보는 것, 그것이 꼭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기자도 셀카를 수도 없이 찍었던 적이 있으며, 여전히 상태가 좋다 싶으면 찍고 있으며, 셀카 찍는 모습을 들키면 부끄럽고, 찍어놓은 셀카들을 친구들이 볼까봐 숨긴 적도 있다. ‘셀카 들킴’은 나의 ‘워너비’ 즉 현실은 그러하지 않는 상태와 욕망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나체로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것일 텐데 어찌 숨기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

◇혼자 먹기 그리고 ‘먹방’

‘혼자 놀기’의 진수는 ‘혼자 먹기’다. 가장 혼자 하고 싶지 않은 일이 ‘혼자 먹기’이지 않은가. 그런데 요즘 방송 트렌드 중 하나는 ‘먹방’으로 혼자 먹는 사람의 모습을 감탄하며 침을 꿀꺽꿀꺽 삼킨다. ‘하정우 먹방’을 시작으로 연예인들은 보는 사람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도록 먹방을 찍어 SNS에 올린다. 인상적인 먹는 장면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은 그대로 누구누구 ‘먹방’이 돼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다. 올 기억에 남는 ‘먹방’은 ‘아빠! 어디가?’의 ‘윤후 먹방’ ‘추사랑 먹방’ ‘류현진 먹방’ 등이다. ‘먹방’이 방송 트렌드가 되자 tvN에서는 1인 가구 ‘먹방’ 드라마라는 ‘식샤를 합시다’를 방송하고 있다. ‘식샤를 합시다’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밥을 통해 혼자인 삶의 표피를 훑어낸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혼 3년차 이수경(이수경 분)은 ‘소개팅남’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1인분은 주문할 수 없는 해물찜을 먹기 위해 그와 점심 식사를 하려 한다. 그가 손톱만큼은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고 오직 1인분은 주문이 불가능하며 2인분 이상을 시키더라도 단체석에서 혼자 먹어야 하는 민망함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또 드라마 ‘상속자들 -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의 영도(김우빈 분)는 차은상(박신혜 분)이 돈도 많으면서 왜 편의점에서 라면을 자주 먹냐고 묻자 “혼자서 뭘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편의점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만큼 혼자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당당한 모습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먹방’에 열광하는 이유 역시 ‘혼자’라는 상태에서 파생된 감정이다. ‘먹방’은 대게 혼자 먹는 장면이 많으며 여럿이 먹더라도 유독 맛있게 먹는 이가 클로즈업돼 ‘누구누구 먹방’으로 한 사람만 나온다. 혼자 먹으려는데 ‘먹방’이 있으니 ‘먹방’의 주인공이 된 듯도 하고 그와 밥을 먹는 것도 같은 그런 느낌으로 ‘먹방’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셀카를 찍고, 혼자 노니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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