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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스토리] 3저 호황과 코리아펀드

1988년 3월7일 한 신문에 게재된 코리아펀드 특집기사.


1984년 9월26일 미국에서 날아 온 매수주문 한 건으로 여의도 증권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코리아펀드'가 낸 주문은 1978년 건설주 파동 이후 7년간 공황을 겪던 증권가에 대세상승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코리아펀드의 주도와 함께 3저 호황의 호기를 맞은 증시는 이후 5년간 1,000%의 대세상승에 진입했다.

코리아펀드는 미국의 투자사가 관리하며 펀드자산의 80% 이상을 한국의 상장증권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배당하는 뮤추얼펀드다. 이미 대한투자신탁(현 하나대투증권)이 운용 중이던 '외국인 전용 수익증권'에 이어 코리아펀드는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위한 2단계로 1984년 5월 대우증권과 미국의 스커더사의 합작으로 설립됐다. 1961년 만들어진 일본의 재팬펀드와 같은 모델인 코리아펀드는 매매는 가능하나 환매는 불가능한 폐쇄형으로 한국에 유리하게 설계됐다.

코리아펀드는 1984년 8월22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이 됐다. 1주당 발행가는 12달러였으나 이보다 조금 높은 12.625달러에 첫 거래가 시작됐고 뉴욕증시 전체 상장주식 가운데 15번째인 80만3,300주가 거래되며 관심이 집중됐다. 이듬해 증시가 대세상승에 진입하자 급등세를 보이던 주가는 1986년 2월의 증자소식에 힘입어 27달러를 돌파했고 1년 후에는 민주화 훈풍으로 86달러까지 치솟았다. 코리아펀드 설립 당시 100포인트에 불과하던 코스피지수는 1989년 4월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코리아펀드의 주가 급등 배경에는 우선 펀드의 운용 능력이 탁월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코리아펀드가 주로 보유하고 있던 현대자동차ㆍ삼성전자ㆍ금성사ㆍ럭키ㆍ삼성반도체 등은 대부분 1985년 9월 코스피지수가 급등을 시작하기 전 매집한 것으로 평균단가는 700원대였다. 우량주를 집중 매집한 후 수년간 장기보유를 해 회전율은 6.82%에 불과했다.



1985년 이후 불어온 3저 호황의 훈풍도 한몫했다. 2차 석유파동 이후 하락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와 플라자합의 따른 환율하락, 세계적인 금리인하 추세도 주된 요인이었다.

최근 외국인들의 사상 최장기간 순매수 행진에 따라 급락했던 코스피지수는 2,000포인트선을 회복했다. 2년여간의 지루한 박스권 돌파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30년 전 대세상승을 이끌었던 코리아펀드의 장세 주도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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