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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신의 뜻과 결투
입력1999-01-06 00:00:00
수정
1999.01.06 00:00:00
崔禹錫(삼성경제연구소 소장)요즘 밑도 끝도 없는 시비들을 보고 있노라면 옛날 서양의 결투도 좋은 방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문상의 논쟁이나 인격모독 사상시비같은 것은 딱 부러진 결론이 나기 어렵다.
프랑스 혁명시절 의사당에서 결투가 성행했다. 그땐 결론이 안나는 말싸움보다 차라리 승부가 빠른 결투를 택했다. 결투를 피하면 비겁자 취급을 당하므로 대개 받아들이게 된다. 결투는 칼이나 권총을 쓰는데 칼은 기량의 차이가 너무 남으로 조금 불공평하다. 권총은 요즘같이 고성능이 아니기 때문에 큰 실력차이도 안나고 또 덜 위험한 면도 있다.
결투가 정해지면 서로 입회인을 데리고 새벽에 으슥한 공원 같은데서 만난다.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한 다음 일정거리를 두고 서로 걸어가 마주 본다. 그런 다음 한방씩 권총을 발사하는데 심장 같은데 맞으면 즉사할 수 있지만 대개 상처만 입는다. 그러면 그것으로 시비를 끝낸다. 신이 시비를 가려준 것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왈가왈부(曰可曰否)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뒤끝이 깨끗한가.
신이 시비를 가려준다는 생각은 옛날엔 일상적이었다. 몽골제국땐 사형수를 화살 3대 거리만큼 먼저 도망가게 해놓고 기마병들이 쫓는데 거의 잡혀 죽지만 그래도 도망에 성공하는 사람은 신의 뜻이라 하여 살려주기도 했다. 중세 마녀재판때도 불 위의 구리기둥을 맨발로 건너가게 했다. 십중팔구는 떨어져 죽지만 그래도 산사람이 있으면 신의 뜻이라 하여 살려주었다 한다. 세상일엔 인간들이 도저히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신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다. 그걸 결투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에선 입으로 논리적 공방을 벌이다 보니 그야말로 끝없는 시비가 됐다. 속으론 정적(政敵) 죽이기를 목적으로 하면서 겉으론 원칙세우기의 명분을 내걸다 보니 끝없는 소모전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자원소모요, 시간낭비다. 그러나 옛날엔 별 할일도 급한 일도 없었으니 그런 싸움으로 일을 삼고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전통과 습관은 오늘날까지 면면(綿綿)이 이어지고 있다.
무슨 총풍이니 청문회니 529호 사태니 하며 밑도 끝도 없는 시비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런 시비 가지고 괜히 검찰이나 사법부만 번거롭게 할게 아니라 사안에 따라 양측 대표끼리 결투를 해서 신의 뜻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어떨까. 그래야 이 격변기에 나랏일을 좀 할수 있는 틈이 생길 것이다. 정초부터 짜증나는 시비를 보다보니 별 엉뚱한 생각이 다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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