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긴장감은 오히려 고조됐다. 한은의 “경기개선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정면 반박하듯 기획재정부는 “경기가 살아난다는 신호가 아니다”라는 정반대 해석을 내놨다. 심지어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재정부 장관은 “당장 조치가 없으면 경제 성장엔진이 꺼진다”고 공격수위를 높였다. ‘경제 성적표’를 놓고도 정부와 중앙은행간에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건설ㆍ수출 덕에 성장률 급속 개선= 지난 1ㆍ4분기 GDP 성장률은 전기대비 0.9%로 나타났다. 더 정확히는 0.87%다. 시장 예상치(0.4~0.5%)는 물론 김중수 한은 총재가 11일 밝혔던 0.8%보다 높다.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경기흐름이다. 지난해 4ㆍ4분기 성장률(0.3%)보다 가파른 개선이지만, 동시에 전분기 성장률이 워낙 낮은 데 따른 기저효과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전년동기비 성장률은 전 분기와 같은 1.5%였다. 두 분기 연속 1.5%를 기록한 것에 대해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바닥을 쳤는지 안쳤는지는 전년동기대비 성장률로 판단하는데, 추가적으로 경기가 침체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률이 잘 나온 건 건설ㆍ설비투자와 수출 덕이었다. 건설투자는 동탄신도시 분양, 전력난에 따른 발전소 건설 등에 힘입어 전기대비 2.5% 증가했다. 설비투자는 기계류와 운송장비가 늘면서 전기대비 3% 늘었지만, 전년동기대비로는 11.5% 감소했다.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만 아직 좋아졌다고 볼 수준은 아니란 설명이다. 김영배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2분기 이후 성장률을 점치기는 힘들지만, 점차 회복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은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회복 놓고 ‘2라운드’= 쟁점은 하반기로 옮겨갔다. 올해는 이른바‘상저하고’가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은 ‘상고하저’ 패턴이 반복돼왔다.
지표상 예감은 좋다. 지난 1ㆍ4분기 재고증감의 성장기여도가 0.4%포인트 감소한 것을 더해도 GDP성장률이 0.9%나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재고 부문에서 성장여력이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못 다한 재정집행을 다음 분기로 넘어가는 효과도 크다. 지난 1ㆍ4분기 정부 예산 집행률은 28.2%로 목표치(30%)에 못 미쳤다. 이 때문에 정부소비의 1ㆍ4분기 성장기여도는 0.2%포인트로 건설투자(0.4%포인트)나 설비투자(0.3%포인트)보다 훨씬 낮았다.
그러나 재정부는 1ㆍ4분기 성장률만으로 경기회복을 예단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ㆍ4분기 경기가 워낙 부진했기 때문에 1ㆍ4분기 경제 상황이 상대적으로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통계적 착시현상을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ㆍ4분기에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실적이 엔저 등의 악재로 위협받고 있다는 점도 낙관을 어렵게 하는 변수다. 아직은 수출 실적 감소가 통계상으로 눈에 띄고 있지는 않지만 이는 이른바 ‘제이(J)커브효과’에 따른 착시현상일 가능성도 있다는 정부의 걱정이다. J커브효과란 환율과 무역량 변화의 시차로 생기는 현상이다. 원화 환율이 하락(원화강세)해도 실제 무역거래에 영향이 미치기까지는 다소 시차가 발생해 단기간에는 수출감소(무역수지 악화)가 눈에 띄지 않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역수지 악화가 뚜렷해지는 현상이다.
지난달부터 이어져온 북한 리스크가 소비ㆍ투자심리나 외국인관광 등에 미쳤을 악영향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당장의 지표만 믿고 경기 낙관을 했다가 경상수지가 어느 순간 급격히 악화되면 책임은 고스란히 한은이 져야 한다는 게 정부 측 논리다.
결과적으로 시장이 이번 경기예측에 대해서만큼은 한은에 ‘판정승’을 줬지만, 경제팀의 정책공조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경기의 완만한 회복’ 논리가 견고해지면서, 두 기관간 자존심 싸움은 더 팽팽해지고 한은의 5월 금리인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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