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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한일회담 타결직전까지 청구권아닌 ‘경제협력’ 고집

당시 회의록서 적나라하게 드러나

일본이 한국인 징용 피해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한일회담 당시 일본 정부는 협정 타결 바로 직전까지도 ‘청구권 해결’이 아닌 ‘경제협력’을 고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그동안 공개한 한일회담 문서에 따르면, 일본은 청구권협정 타결 약 한달 전인 1965년 5월14일 도쿄 외무성에서 열린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한국에 제공하는 (청구권) 자금은 배상 성격도, 한국측이 요구하는 청구권 해결을 위한 것도 아닌, 어디까지나 경제협력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집요하게 주장했다.

일본은 특히 이 회의에서 한국측이 일본의 자금이 청구권 해결의 성격을 갖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데 대해 “한국에 대한 일본 측의 제공은 어디까지나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배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협력이라는 것이다”, “한국 측에서는 청구권의 대가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정조치돼야 한다”(이상 니시야먀<西山> 당시 일본측 회담 대표의 발언)고 청구권이 아닌 경제협력 형식의 타결을 고집했다.

일본 측의 이 같은 입장은 한국 법원의 징용피해 배상 판결 등과 관련, 일본 정부가 징용 배상과 개인 청구권 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2년 3개월이 앞선 1963년 2월14일 개최된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제27회 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일본 측은 당시 청구권 관계 회의 명칭을 아예 ‘경제협력 관계 회합’으로 하자고까지 제의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 대표(배의환 주일대사)가 “과거 10년 동안이나 써온 회의 명칭을 지금 와서 고친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종래의 명칭을 사용하자고 하자, 일본 측은 “한국 측에서는 청구권 관계 회합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일본 측은 ‘그 회합’ 정도로 부르겠다”고 맞섰다.



일본 측의 이러한 태도는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청구권 자금(무상 3억, 유상 2억 달러)을 ‘독립 축하금’이라고 했던 당시 일본 정치권의 ‘비아냥’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1965년 6월22일 서명된 한일청구권협정 명칭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타결된 것도 일본의 이러한 입장이 반영된 정치적 타협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정부는 한일회담 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 단체의 소송 판결에 따라 당시 회의록 등을 공개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이 담긴 회의록은 아예 회의록 전체를 비공개 대상으로 하거나 이러한 대목은 흑칠로 삭제한 채 부분 공개하고 있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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