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수가 10여명에 불과한 영세 금형업체 A사 사장은 파견근로자보호법이 하루빨리 통과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인력이 모자라 채용을 하려고 해도 정규직으로 한번 고용하면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는 해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국회에서 파견근로 규제를 완화하는 입법이 지연되면서 내년에 사람을 뽑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동개혁 관련 입법 및 후속 지침 마련이 미뤄지면서 경영계의 인력운용난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5대 법안 중 파견근로법과 기간제 연장 등 노동시장 유연화와 직결되는 법안 처리가 늦어져 중소기업들의 구인난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또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저성과자 일반해고 가이드라인과 임금피크제 관련 취업규칙 변경 조치도 차일 피일 미뤄지는 점도 경영계에 부담요인으로 꼽힌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2일 "노동개혁 관련 5대 법안 및 2대 지침 처리 지연으로 대기업은 물론이고 특히 중소기업들이 인력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5대 노동개혁법안 중 최대 쟁점인 파견근로 허용업종의 확대와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기간 연장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임금피크제가 발등의 불이다.
김 본부장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등의 제도적 장치 없이 당장 내년부터 60세 정년연장제도가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인력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용노동부의 지난 6월 말 기준 통계를 보면 30대 그룹 주요 계열사의 47%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후 추가로 도입한 사업장 등을 고려하면 60%가량의 기업들이 현재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제조업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현재 비공식적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년은 만 58세이지만 건강상 결격 사유가 없으면 60세까지 근무를 허용한다. 다만 59세 때는 임금이 동결되고 60세 때는 10%가 감액된다. 실질적으로 정년을 보장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인건비 구조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져 감액률을 확대하자는 것이 회사 측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강성 지도부로 교체된 후 연내 임금피크제 도입은 물 건너간 상태다.
저성과자 일반해고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지체되고 있는 점도 임금체계 개편의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돼도 곧바로 '쉬운 해고'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저성과자 일반해고제도는 상징적 의미가 있을 뿐 실제 기업들이 시행하기 어렵다"면서도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임금체계 개편 등의 노사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도 저성과자 일반해고 등 노동시장 유연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만성적인 구인난 해결은 요원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난 20여년간 노동시장이 경직되면서 대기업에서는 강성 노조가 자리를 잡았고 임금이나 노사 문제가 강경 일색으로 가다 보니 대기업의 임금이나 복리후생은 끝도 없이 올랐다"며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1인당 인건비는 대기업의 60% 수준으로 적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금액 기준으로 보면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오히려 대기업의 과잉임금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기업의 임금인상에 따른 폐해는 고스란히 중소기업에 전이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수준의 임금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다 대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1~2차 협력업체로 전가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군포시에서 15년째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식(가명) 대표는 "대기업은 노조가 요구하면 임금인상이든, 성과급 지급이든 두 손 들고 다 해주면서 그에 따른 부담은 우리 같은 협력업체에 전가하고 있다"면서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납품가에 반영되지 않으니 우리는 직원 임금을 동결할 수밖에 없고 결국 박봉을 못 견디고 떠나는 직원이 부지기수"라고 하소연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잠재 경제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동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민정·이혜진기자 jminj@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