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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16' 현장서 반도체 기업 퀄컴의 로고는 유난히 자주 눈에 띄었다. 퀄컴 전시관은 총 세 곳. 스마트카 업체들이 모이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북쪽에도, 가전업체들이 모여 있는 중앙무대에도 있었다. 퀄컴은 이번 CES 2016에서 차세대 스마트카의 통신용 칩인 '스냅드래건 820A'를 비롯해 스마트드론용 칩 등 미래산업을 위한 다양한 핵심 부품을 선보였다. 퀄컴과 협력해 자율주행차용 인공지능 소프트웨어(SW) 네트워크를 개발하는 실리콘밸리 기업 '나우토'의 필 랩슬리 부사장은 "우리는 퀄컴의 반도체를 기반으로 스마트카가 도로환경을 학습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SW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며 "글로벌 완성차 기업 두 곳에 대한 기술 적용을 논의 중"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 융복합 산업의 경연장인 CES 2016에서 주인공은 삼성전자·LG전자 같은 가전 회사나 기아자동차·제너럴모터스(GM) 등 완성차 업체들뿐이 아니었다. 드론에서 로봇·스마트카에 이르는 차세대 기기들의 핵심 부품을 설계하고 만드는 기업들도 앞다퉈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청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경연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세계적 그래픽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아우디·볼보에 탑재를 논의 중인 세계 최초 스마트카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드라이브PX2'를 공개했다. 브로드컴은 보다 정확한 차량 위치 추적과 원활한 차량 간 통신을 위한 스마트카용 GNSS 무선통신칩을 선보였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인텔의 전시관은 인텔의 칩을 단 최신 드론을 체험해보려는 참관객들로 붐볐다. 인텔은 드론들이 서로를 인지해 비행 중 충돌을 방지하는 '리얼센스' 기술을 적용한 중국 업체 유닉의 '타이푼H' 드론을 시연했다.
이에 질세라 전통적 차량 부품 업체도 다양한 솔루션을 내놓았다. 델파이는 새로운 자율주행 기술인 V2E(Vehicle to Everything) 기술을 선보였다. 자동차가 다른 차, 신호등, 보행자의 스마트폰 같은 만물과 인터넷으로 연결돼 위험을 회피하고 자율주행을 실현하는 게 V2E의 구체적 내용이다. 폴크마 덴너 로버트보쉬그룹 회장은 스마트홈·스마트시티와의 연계성이 강화된 미래형 스마트카 콘셉트를 제시했다.
이처럼 글로벌 부품 기업들의 뜨거운 경쟁 무대에서 한국 기업은 260㎡(약 80평) 규모로 참가한 현대모비스를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현대모비스 역시 차세대 자율주행차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같은 기존 시스템을 전시한 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드론 분야에서도 바이로봇이 유일하게 독립 부스를 구성했지만 국내 드론용 반도체 기업의 전시관은 전무했다.
스마트카와 드론 같은 각종 융복합 산업들이 대세로 등장하면서 이들의 발전을 뒷받침해줄 핵심 부품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전 세계 자율주행차 연간 판매량은 23만대, 2035년에는 1,18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기업은 눈에 띄지 않는 실정이다.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이나 SW 기업이 부재한 한국의 현실이 스마트카 산업에서의 기술우위 확보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CES 2016 현장서 만난 국내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업계의 스마트카 핵심기술 수준이 미약해 어쩔 수 없이 실리콘밸리 기업과 협업할 수밖에 없다"며 "스마트폰 업체들이 ARM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원천기술 보유기업에 매년 수조원의 기술 로열티를 지불하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라스베이거스=이종혁기자 2juzs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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