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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았다’…변칙수도 못잡은 무감정 인공지능

심리적 영향을 받지 않는 ‘무 감정’의 인공지능한테는 어떠한 변칙 수도 통하지 않았다.

9일 ‘센돌’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벌인 대국에서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와 대결을 벌였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과시했다. 국내 프로 바둑 기사들도 알파고의 바둑을 보며 ‘프로의 실력이다’고 말할 정도였다. 조혜연 9단은 “알파고는 경기 내내 공수를 동시에 진행했고, 일부 수는 30수 이상을 내다봤다”고 했다.

중국 규칙에 따라 진행된 이번 대국은 이 9단의 첫수로 시작됐다. 백을 잡은 알파고에 7.5집을 더해주는 방식이다. 바둑을 먼저 두기 시작한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에 나중에 둔 사람의 불리함을 보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다.

알파고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초반부터 장고를 거듭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완벽한 수 읽기가 가능해 정석과 같은 수를 펼 수 있지만, 대국 초반은 계산해야 할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에 고전할 수밖에 없다.

알파고가 이 9단의 첫수에 대응하는 데는 2분 가량 소요됐다. 하지만 그의 변칙적인 수에 무너지지 않고 초반 기세를 잡는 데 성공했다. 전형적인 방법으로 응수하면서도 오히려 공격적으로 몰아쳤다.

중반에는 이 9단과 알파고가 서로 공격을 주고 받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별명이 ‘중반 13단’일 만큼 중반 실력이 월등한 이 9단은 알파고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막아냈고, 알파고는 다음 수를 차근차근 이어갔다. 특히 알파고는 인간 기사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던 ‘버티기’까지 선보였다. 비틀기와 버티기, 흔들기는 바둑 정석에는 없는 기술로, 과거의 기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를 두는 알파고가 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됐었다.

알파고의 약점이 변칙이라는 점을 의식해 다양한 수로 승기를 잡으려던 이 9단은 점점 알파고의 실력을 인정하는 듯 전열을 가다듬었지만 종반전으로 치달을 수록 그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유창혁 9단은 “이세돌 9단이 처음부터 판을 좀 어렵게 짜려는 의도로 보통은 잘 두지 않는 수를 두며 비틀었다”면서도 “하지만 누가 이세돌 9단인지 모를 정도로 알파고의 대응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초반 윤곽이 드러났지만, 게임의 분위기는 여전히 알파고가 끌어갔다. 인공지능의 약점이 보이지 않았다. 이세돌 9단의 변칙수에 오히려 본인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유창혁 9단은 “여러 작전을 펴고 있기는 하지만 알파고가 여기에 밀리거나 이상한 수를 두지 않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변칙 수를 찾는다는 것은 분위기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70수 후반대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이 9단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알파고가 경기 도중 시스템 오작동(버그)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의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초반 기세를 올렸던 알파고가 대국 중반부터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프로 기사의 모습을 보이던 알파고가 갑자기 아마추어 같은 착수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전체 판세를 유리하게 가져갔다. 몇 차례 실수마저 완벽하게 극복했다. 막판에 승부를 뒤집은 것이다. 알파고는 102수로 우변 흑집에 침투했는데 이세돌 9단이 장고 끝에 묘수를 찾지 못하면서 승부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세돌 9단은 뒤이어 맹추격전을 펼쳤으나 좀처럼 판세를 뒤집지 못한 채 186수에서 돌을 던졌다.

/권용민·정혜진기자 minizzang@sed.co.kr

9일 대국을 벌인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기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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