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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알파고 만든것은 개방성...'선단식 경영' 벗어나 합종연횡 나서야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우리만의 강점 살려 세계적 혁신기업과 연합군 형성 필요

주력업종 부진은 '파이 지키기' 연연하다 변화흐름 놓친탓

글로벌 수요 감소세 개선...하반기에나 수출 회복 가능성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구글이 결국 승자가 됐습니다. 또 하나는 알파고가 히트를 쳤다고 그걸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남들이 일가를 이룬 분야에 뛰어들어봐야 꽁무니만 쫓지 않겠습니까. 앞설 수 있는 분야부터 찾아야 합니다”

25일 세종시 정부 청사 인근에 자리한 산업연구원에서 만난 김도훈(사진·59) 산업연구원장은 알파고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알파고 이후 우리 사회에 번지는 ‘알파고 따라잡기’ 현상을 경계했다. 김 원장은 “신산업이 꽃을 피우려면 금융이 됐든 의료 서비스가 됐든 우리의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며 “그래야 경쟁력을 확보하고 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업들이 보다 오픈 마인드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구글이 뛰어난 이유는 딥마인드와 협업할 줄 알았다는 점”이라며 “인수·합병(M&A)을 하더라도 밑에 계열사로 두길 바라는 국내 기업이라면 (딥마인드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신산업 환경에서는 ‘선단식’ 경영이 아니라 잘하는 기업을 내 편을 만드는 ‘합종연횡식’ 경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주력업종의 부진에 대해서는 “파이 지키기에 연연해 산업의 변화 흐름을 놓쳤다”고 짚었고, 수출 회복 시기로는 조심스럽게 올 하반기를 지목했다. /대담=이상훈 경제부 차장 shlee@sed.co.kr

-수출 흐름이 너무 안 좋다. 반전은 언제쯤 가능할까.

△핵심은 수요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침체하면서 회복이 더디다. 우리는 선진국 수출이 줄면서 수출처를 신흥국으로 옮겼다. 대표적인 곳들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이다. 하지만 유가가 하락하면서 신흥국 경제도 안 좋다. 우리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도 어렵다. 그간 중국에 중간재 수출을 많이 해 왔는데, 전 세계 수요가 줄면서 중국도 트랩에 빠졌다.

우리 수출이 회복하려면 글로벌 수요 감소가 개선돼야 한다. 최근 유가 흐름을 보면 나쁘지는 않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 생산량 동결에 합의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 수출 물량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 개선으로 상품 가격이 긍정적으로 움직인다면 수출액 자체가 플러스로 돌아설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수출 감소 폭이 커 기저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하반기에나 수출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가 소비재 수출을 늘리는데 공력을 쏟고 있다.

△중국으로 식품과 유아 용품 등 소비재를 늘리는 전략은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전략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을 늘릴 곳은 그쪽뿐이라는 절박함과 기대감 아니겠나. 선진국 시장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수출이 늘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선진국은 그 나라 시장의 흐름이 있고 트랜드가 있다. 그 시장의 메커니즘에 따라 돌기 때문에 수출을 크게 늘릴 여지가 없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한국 제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중국 소비자를 공략하는 식품·화장품·의료서비스 분야는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런 품목들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중간재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중국 소비재 시장과 더불어 눈여겨봐야 할 쪽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이후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인도다. 앞으로 아시아의 대표 생산공장으로 클 가능성이 높다. 인도 수출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한·중·일 3국의 산업구도는 어떤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데.

△약 11년 전에 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로 누가 제일 좋은지 분석했었다. 당시 최고가 중국, 최악이 일본이었다. 중국은 수입구조가 우리 수출구조와 딱 맞았다. 최고의 수출 시장인 것이다. 반면 일본의 수출 구조는 우리와 거의 같지만, 수입구조는 우리 수출과 동떨어져 있었다. 경쟁해야 하는 상대방이란 얘기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한·중·일 3국이 소재산업 분야에서 자동차까지 치열한 경쟁 중이다. 특히 중국은 괄목할만한 기술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이제 중국은 과잉생산 시설에 대해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해 나갈 것이다. 그 일이 끝나면 중국은 효율성마저 높아진다. 치열하게 경쟁했던 일본은 어떤가. 지속적인 엔저를 등에 업고 제품 가격 경쟁력을 회복 중이다. 우리가 중·일에 비해 특화된 몇몇 분야는 상당기간 경쟁력은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과 겹치는 산업 분야는 더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자동차도 이제 점점 중국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있고 휴대폰은 이제 중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밀렸다고 봐야 한다.



-주력산업이 어렵다. 길을 못 찾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차기 산업으로 로봇이나 바이오·사물인터넷 등을 얘기하지만, 구체적으로 잘할 만한 분야는 화장품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차세대반도체(SSD) 정도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산업구조 변화에 상당히 무디게 살아왔다. 전체 수출에서 정보기술(IT)·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산업 비중이 80% 정도인데 200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 산업들은 그동안 잘해왔다. 조금씩 혁신하고 좋은 제품을 내놓으며 세계적으로 최첨단이 됐다. 하지만 큰 기업이나 작은 기업이나 자기 시장 파이를 지키는 데 급급했다. 정부도, 언론도, 국민들도 새로운 산업에서 가능성을 찾으려는 고민을 덜 했다. 그 결과 우리의 산업구조가 늙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산업구조 재편에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재편이라고 하면 우리는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고 과잉생산을 축소하는 산업 구조조정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아니라 ‘재편’이다. 우리는 구조조정에 초점을 두느라 고도화에는 소홀했다.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산업 재편의 길을 터줬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신산업이 태어나게 해야 한다.

-우리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어떤 고민이 더 필요한가.

△제조업과 서비스업 결합을 모색해야 한다. 현대차가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도 잘하고 중국, 유럽, 브라질 등 사업환경이 다른 여러 곳에서 다 잘하고 있다. 원인을 찾아보면, 강점은 바로 제조 기술과 제조시스템에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만으로 신산업 시대에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 점점 더 제조업에 소프트웨어가 입혀지고 서비스가 더해지고 있다. 원격의료와 핀테크 이런 분야가 다 신산업이다. 요즘 정보기술(IT)을 접목하는 GE를 주목하고 있다. 이미 세상의 발전설비와 공장에는 GE 제품이 상당히 많이 깔려 있다. GE는 이 모든 것을 빅데이터로 만들었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일종의 오퍼레이션(운영) 시스템까지 내놨다. 이제 우리나라의 공장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GE의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 산업 기반이 GE 같은 글로벌 기업에 예속될 수도 있는 상황까지 왔다. 요즘 GE 행보를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조업·소프트웨어·서비스 등을 결합한 플랫폼도 신산업인데,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뒤처지고 있다.

-어떻게 변해야 새로운 흐름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한 번 생각해보자. AI에 충격을 받고 알파고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까 너도나도 다 남이 간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우린 알파고를 뒤따라갔다가는 망한다. 이미 구글과 같은 기업들은 먼저 간 그 길에서 거인이 됐다. 이미 앞서 간 기업이 AI에 33조 원을 투자했다는데 우리는 고작 수천억 원 투자해서 따라가려고 한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남들이 전혀 가지 않은 길, 우리 쪽에서 강한 부분을 더 강력하게 할 수 있는 길에서 거인이 돼야 한다. 또 알파고는 구글이 만들지 않았다. 소스를 열고 잘 만들어 보라고 했다. 대신 가장 잘하는 기업이 나타나면 ‘너는 우리 편’이라며 큰 돈을 주며 함께한다. 이른바 합종연횡이다. 세계적인 경쟁력과 기술력을 가진 혁신기업과 연합군을 형성하는 것이다. 신산업은 개방형 플랫폼, 개방형 혁신이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어떤가. 그룹 아래 서로 관련성도 없는 다른 계열사가 모여있고 다시 그 아래 협력업체들이 붙어있다. 이른바 거대 기업을 중심으로 선단을 이루는 경영이다. 항공모함 끌듯 업체들을 덕지덕지 붙여서 한팀이 돼서는 진정한 시너지를 낼 수 없다.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실리콘밸리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기업들의 문화도 개방형 플랫폼에 적응하지 않으면 발전 가능성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정부 규제가 신산업을 막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는 규제를 걷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 신산업분야를 보면 우리는 의료서비스와 금융 분야에 잠재력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이쪽은 크게 드러난 기업이 많지 않다. 우리가 전문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모으고, 기업들을 주도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꿈을 꾸게 해야 할 분야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분야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반발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산업은 기존 것의 파괴를 뜻한다. 그쪽 분야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정부는 신산업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여기에 있으니 감수하라’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규제 개혁으로 입는 피해를) 보상할 무언가를 찾아서 제시해야 그들이 마음을 열 수 있다. 정부가 접근 자체를 좀 더 슬기롭게 해야 한다. 정부가 이해 조정자 역할을 못하면 신산업이 꽃 필 토양 자체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정리=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

<약력>

△1957년 부산 △1979년 서울대 무역학과 △1990년 프랑스 파리1대학 경제학박사 △1997년 통상산업부 장관자문관 △199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무역국 수석행정관 △2006년 산업연구원 부원장 △2014년 한국규제학회 회장 △2013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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