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역정책이 아웃사이더들의 손에 넘어가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나 민주당 후보인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 돌풍에서 세계화에 대한 미 유권자들의 광범위한 반감이 확인되자 민주·공화 당을 막론하고 이들의 고립주의 무역정책을 대거 수용하고 있다.
우선 11일(현지시간) CNN 보도에 따르면 공화당이 마련한 대선 정강 초안은 트럼프의 대선 구호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그대로 반영했다. 사회정책 등은 변화가 거의 없지만 무역정책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 기본 요지다. 이번 공화당 초안은 다른 나라가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일삼을 경우 미국도 관련 의무를 지키지 않고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번 초안에서 공화당은 개방경제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했다.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등과 같은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도 반영되지 않았고 FTA 전반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TPP 의회 비준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화당은 의회의 TPP 찬반투표는 연내에 실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TPP가 체결되면 아시아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대비된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는 공화당이 트럼프 공약대로 TPP에 반대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옹호해온 공화당마저 경제난에 지친 유권자들의 표심 확보를 위해 이전보다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을 지정하고 중국산과 멕시코산 수입제품에 대해 각각 45%, 35%의 수입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집권 때는 글로벌 무역전쟁이 우려된다. 한미 FTA에 대해서도 무역적자가 배로 늘고 일자리 10만개가 날아갔다며 재협상 방침을 공언해왔다.
상대적으로 보호무역 색채가 더 강한 민주당은 9일 “당 역사상 가장 진보적 정강”이라고 평가받는 정강 초안을 확정했다. 과거 자유무역 지지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노조 등 유권자를 의식해 한발 물러선 가운데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샌더스 의원의 정책이 대거 반영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정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무조항은 없지만 공약 파기 논란과 지지율 하락을 피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정책 현실화를 위한 압력을 받게 된다.
민주당 초안은 “지난 30여년간 너무나 많은 무역협정 체결에도 노동자 권리, 환경 보호 등에 실패했다”며 “앞으로 일자리, 임금 인상 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 어떤 새로운 무역협정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국영기업 보조금, 통화가치 절하, 기업 차별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일삼고 있다”며 “그들 국가에 책임을 지우도록 모든 무역집행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심상찮은 무역공세를 예고했다. TPP에 대해서도 협상을 체결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권위를 고려해 ‘반대’ 입장을 넣지는 않았지만 “노동자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동의해주기 어렵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특히 민주당은 중국을 유일하게 국가 이름까지 거론하며 환율조작국이라고 공격해 중국과의 환율갈등을 예고했다. 미 재무부도 4월 말 중국을 비롯해 한국·일본·독일·대만 등 5개국을 환율조작 여부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한 바 있다.
또 민주당은 이번 초안에서 샌더스 지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소득 12만5,000달러 미만 가정 자녀들의 공립대 학비 면제, 공공의료보험 강화 등 ‘좌클릭’ 정책을 내놓았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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