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본에 출장을 갔을 때 편의점마다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본 적이 있다. 편의점에는 작은 조리실까지 갖춰져 있었고 메뉴도 불고기부터 생선·카레라이스까지 다양해 간편식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중년층들은 아예 도시락을 사 들고 집으로 가서 맥주와 곁들여 먹는 것도 유행이었다. 일본이야 일찍부터 도시락문화에 친숙한데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탓이거니 하면서 남의 나라 일로 여겼을 뿐이다.
그랬던 일본의 도시락 문화가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홀로 끼니를 해결하는 ‘혼밥족’이 늘어나면서 4,000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형 편의점이 마케팅 전쟁에 나서면서 유명 연예인들의 이름을 딴 도시락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사람’을 일컫는 ‘편도족’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체면을 중시해온 중장년층도 편의점 도시락 대열에 앞다퉈 뛰어들면서 국민 외식메뉴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일본의 경우 버블이 붕괴되면서 식비조차 부담스러운 편도족이 탄생했다면 우리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편의점 도시락 시장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이 때문에 1인 가구 증가나 편리성 추구 등 사회 트렌드 변화와 함께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시대에 진입했다는 증거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프리미엄 제품을 앞세워 도시락 가격이 점차 높아져 부담스러운데다 적정 영양분을 둘러싼 일각의 논란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일찍이 일본 정부가 시중에 판매되는 도시락의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같은 영양소를 조사해 ‘건강한 식사’라는 공식 인증을 부여하는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해서다.
무엇보다 편의점 도시락에서 배울 것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끊임없는 변신일 것이다. 우리네 식탁을 점령한 편의점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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