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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풍 휘둘리는 국가R&D] 독립성·일관성·장기비전 부재...연구현장 목소리 귀기울여야

<중>정부 입김에 좌우되는 한국연구재단

대통령 직속 美 NSF 벤치마킹 했지만 자율성 후퇴

미래부 산하로 편입...예산·부처 중복과제 조정 애로

잦은 정부 담당자 교체·제도변경에 단기과제 치중

연구자 창의성 유도·연구비 횡령 단속 강화도 필요

한국연구재단 전경/사진=홈페이지캡쳐






“한국연구재단 고위직도 미래창조과학부 과장이나 사무관의 지시를 받습니다. 독립적이지 않죠. 연구자나 기관을 심사하거나 평가할 때 미래부에서 ‘밤놔라 배놔라’하면 그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전직 한국연구재단 관계자)

“국가 전체의 R&D(연구개발)를 총괄할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안 돼 있어 아랫단에서 외풍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결국 핵심은 예산 배분인데 이 부분이 미래부, 기획재정부에서 겹겹이 통제를 받습니다.”(정부 출연연구원 고위관계자)

독립성·일관성·장기비전을 가지고 국내 연구자들의 발전을 지원해야 R&D 사업이 정부의 입김에 좌지우지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양 위주의 연구를 양산하고 연구자들의 창의성을 도모하기에도 행정 절차가 너무 많다. 연구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도 변경이 이뤄진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가 R&D 예산(19조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조 5,000억원을 배분하는 한국연구재단은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을 벤치마킹했지만 구조적으로 거리가 있다. NSF는 미국 대통령 산하기관으로 설립돼 올해 74억달러(8조6,000억원)의 R&D 예산을 집행하며 배분 투명성·공정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연구재단은 2009년 학술진흥재단과 한국과학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합쳐 만들었는데 오히려 독립성이 후퇴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출연연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장관급 기구이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현 정부들어 없어지고 미래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체제로 가면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방부, 환경부 등 부처 간 예산 배분과 중복과제 조정 등에 애로가 커졌고 때로는 과학기술계의 뜻과 상관없이 예산 편성이 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학계 일부에서도 정부 담당자들이 전문성이 쌓이기도 전에 자주 바뀌고 현장 이해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실례로 2014년 연구재단 창의연구진흥사업 과제에 ‘해외 평가’를 집어넣어 논문을 영문으로 작성해 해외 전문가한테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하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미래부와 연구재단 측은 “글로벌 첨단연구를 해야 해 해외평가가 불가피하고,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보안서약서와 기피평가자를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지만, 지방 사립대 김모 교수는 “객관성을 높이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기술이나 아이디어 유출우려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수도권 사립대 이모 교수는 “1년짜리 단기 과제를 수행하며 촉박한 시간 내에 간신히 논문을 마무리했지만 관의 형식에 맞춰 보고서를 쓰는데 많은 애로를 겪었다”며 “정부 보고용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로 인해 과제 평가에 국립대 교수들의 참여가 줄어들면서 연구재단의 연구과제 심사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올해 한국연구재단이 위촉한 평가위원은 자신이 맡게 된 사업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상피제에다가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며 심사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사립대의 강모 교수는 “행정만 해본 사람들의 영향력이 과도해 담당자의 가치관에 따라 제도가 왔다갔다 한다”며 “연구만 하다가는 바뀐 평가제도를 못 따라가 자칫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라고 주장했다.

연구재단이 학계나 출연연의 연구현장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는 연구비 횡령에 대한 단속 의지를 더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례로 항공기 온실가스 배출 시뮬레이션모델 연구를 하던 한 국립대 교수는 지난해 김모씨 등을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한 뒤 일부를 모친 계좌로 받아 2,000만원 가량을 신용카드 결제 등 개인 용도로 썼다가 적발됐다. 이처럼 허위로 인건비나 회의비를 청구하거나 물품 구입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기도 한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연구비 부정이 이뤄진 출연연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연대책임을 묻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연구재단이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2012년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총 548건의 비리가 적발됐는데 이중 연구비 비리가 387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획부실 등 기획과정 문제가 45건, 부당한 선정 평가 64건, 기술료 관리 등 성과 관리 미흡 52건 순이었다.

지방의 한 국립대 교수는 “연구재단으로부터 연구결과를 다 내놓은 상태에서 과제를 제안받아 연구비를 받은 적도 있다”며 “선정단계부터 결과까지 논문으로만 이뤄지는 구조도 바꿔야 하고 무엇보다 연구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병선 미래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R&D자금이 세금으로 운용돼 정부가 최소한의 평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관리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연구자 중심의 창의적인 기초연구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용민·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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