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중국 정부가 현지 롯데 계열사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 및 소방·안전 점검에 나서자 롯데 내부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롯데가 경북 상주군 골프장 부지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시설에 내주면서 머지않은 시기에 중국의 보복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탓이다. 롯데는 중국의 대대적 조사 작업 이후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상황 점검에 나섰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발을 굴렀다.
중국 정부는 이에 앞서 한류콘텐츠 배포를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을 발동해 엔터 및 화장품 산업을 사실상 제한했고 삼성SDI·LG화학 등이 현지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한 자동차배터리 사업에 대해서도 국내 업체의 공장 가동을 가로막는 수준의 진입장벽을 쌓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중국 선양시에서 롯데가 추진해온 ‘선양 롯데타운’이 최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토지 사용 허가증인 ‘토지증’을 발부 받으면서 중국이 한국 기업 압박의 수위를 조절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탄핵 정국으로 사드 배치를 비롯한 우리 정부의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엿보이면서 중국 정부가 조금은 달라진 스탠스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선양은 롯데의 진출이 활발한 지역 중 한 곳으로 지난달 중국 정부의 전방위 압박 조사 당시 선양 롯데백화점에도 세무당국 직원들이 들이닥쳐 최근 5년치 세무 관련 자료를 요구했고 현지 롯데캐슬 모델하우스는 폐쇄 요구를 받기까지 했다.
이 같은 ‘상반된 행보’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이해관계가 달라 벌어진 일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수년 전부터 철강업체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대규모 실직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방정부의 반발에 부딪혀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전례가 있다”며 “롯데타운 허가 건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엇박자’가 일어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한국 기업에 대한 강공 일변도의 규제 정책을 이어갈 경우 투자와 고용이 모두 위축될 수 있어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지적도 동시에 제기된다.
실제로 사업 중단 위기까지 거론되던 삼성SDI의 중국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최근 제한적이나마 다소 숨통이 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국내 기업들이 생산하는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버스에 대한 보조금 금지령을 해제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베이징에서 신에너지 자동차 안전감독관리업무회의를 열고 내년 1월1일부터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는 버스 유형에 삼원계 배터리 버스를 포함했다. 이에 보조금 지급을 희망하는 배터리 업체는 ‘전기버스 안전기술조건’을 만족시킨다는 제3기관의 검사보고서를 내년 7월1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홍콩에서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버스에 화재폭발사건이 일어나면서 올해 1월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버스를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때문에 삼성SDI·LG화학 등 한국산 전기버스 배터리 공급이 중단됐지만 중국 정부는 BYD등 중국 업체가 주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방식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버스에는 보조금을 계속 지급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려는 덜었지만 국내 배터리 업계는 아직 세부조건이 명확히 파악이 안 된 만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단 공급 가능성이 다시 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아직 어떤 항목들이 있는지 신중히 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전기차 배터리 규범인증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중국이 방향을 바꿀지도 주목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5월 시행한 전기차 배터리 규범인증에 따라 4차례에 걸쳐 인증기업을 선정했지만 삼성SDI와 LG화학은 포함되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예측이 잘 안 되는 부분이지만 중국 내부에서도 반발이 큰 만큼 인증을 어느 정도 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서일범·김현진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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