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바로 지금, 무대 위에 더 날 선 화두가 필요한 이유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는 올해 검열·예술계 성폭력·소수자·전체주의 등 동시대의 한국사회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품 10편을 올린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이 같은 시즌 프로그램 편성에 대해 “21세기에 걸맞지 않게 다른 것을 배제하고 다른 것을 수용하는 일에 공포·두려움을 조장하는 세상이었다”며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화두를 다뤄 공공극장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7 이반검열’(4월 6~16일)이연주 구성·연출)이 시즌의 문을 연다. 이 작품은 지난해 문화 검열 및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예술인들이 진행한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에서 선보인 작품을 토대로 한다. 성소수자·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말을 통해 사회적 기준에 길든 개인이 이반, 즉 소수자에게 가하는 차별과 폭력을 그린다. 구성·연출을 맡은 이연주는 “국가가 차별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는지, 어떤 제도와 교육 통해 학습되는지 과정을 살펴볼 것”이라며 “이는 결국 정치적 이야기를 금지하고 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는 작품만 지원하겠다는 정부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바통을 이어받는 ‘가해자 탐구-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4월 21~30일)는 지난해 수면 위로 떠오른 예술 장르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다. 피해자의 다양한 사례 중 문화 권력으로 대표되는 위계, 그리고 문제 제기 시 창작의 기회를 잃을 것이라는 공포 조장 등의 부조리에 집중한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논란의 시발점이었던 연극 연출가 박근형의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5월 13일~6월 4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남산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박 연출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5 창작산실-우수 공연작품 제작 지원’ 심사에서 배제됐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6년 대한민국 경남의 탈영병, 1945년 일본의 카미카제 조선인 청년, 2004년 이라크 팔루자의 피랍 한국인,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의 해군 등 각기 다른 시공간의 사람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전인철 연출의 ‘국부’(國父·6월 10~18일)는 지난해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에서 선보였던 ‘해야된다’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초인’을 발전시킨 작품이다. 궁정동 안가에서 삶을 마감하던 순간 의연하고 초인적인 면모를 보였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담은 ‘초인’에 북한의 김일성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더해 만든 작품이다. 지도자의 신화가 깨진 2017년, 찬양의 말을 빌려 역설적으로 ‘그들은 진정한 국부인가’라고 묻는다.
이 밖에도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앤드씨어터가 함께 제작한 ‘창조경제-공공극장편’(7월 6~16일)과 남산예술센터의 건축적 특징을 활용해 극장 안 관객을 작품화하는 서현석 작가의 ‘천사’(가제·8월 30일~9월 3일), 독립운동가 현순 목사와 그의 아들 피터 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고영범 작·이성열 연출의 ‘에어콘 없는 방’(9월 14일~10월 1일) 등이 관객과 만난다. 자세한 작품 설명 및 공연 일정은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http://www.nsartscenter.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