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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작된 도시’ 디테일의 화신 오정세, 그가 ‘민천상’을 만드는 방법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오정세가 연기한 악역 ‘민천상’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캐릭터다.

독특한 악역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대인기피증 환자처럼 온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민천상’이라는 캐릭터의 비열함을 눈여겨 볼 수도 있지만, 전형적인 오락 영화인 ‘조작된 도시’이니 악역 캐릭터도 전형성이 필요하다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머리만 좋을 뿐 행동은 소위 찌질한 ‘민천상’의 캐릭터에 대해 환멸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 하나는 알아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민천상’이라는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다면 이미 당신은 오정세가 만들어낸 마법에 걸렸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제공 = 프레인TPC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원래 오정세의 역할은 국선변호사이자 사건의 흑막인 ‘민천상’이 아니었다. 원래 오정세는 권유(지창욱 분)를 돕는 게임 파티원 중 한 명의 캐릭터로 캐스팅이 됐지만, 처음부터 오정세의 눈에 꽂혀 있던 캐릭터는 악역인 ‘민천상’이었다.

하지만 이미 ‘민천상’ 역할에는 다른 배우들이 물망에 올라 있었고, 오정세는 박광현 감독에게 혹시라도 물망에 오른 배우들이 모두 거절한다면 ‘민천상’ 역할에 오디션이라도 보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촬영 2주 전, 너무나도 독특한 ‘민천상’의 캐릭터에 부담을 느낀 배우들이 하차를 결심하면서 오정세에게 ‘민천상’을 연기할 기회가 돌아왔다.

“오디션이라기보다 감독님에게 ‘민천상’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갔어요. 메뉴판을 들고 갔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키가 작은 왜소증의 국선변호사 캐릭터도 생각했는데 이건 촬영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해서 보류했고, 다음으로는 저 사람에게 무슨 병이 있나 싶을 정도로 탈모가 심한 캐릭터도 고민해봤지만 이것도 가발 준비에 시간이 걸려서 보류됐어요. 아무튼 저는 외적이든 내적이든 피해의식이 있어서 잘못 성장한 인물로 ‘민천상’을 그리고 싶었고, 그 결과 원래 몸에 있던 반점을 일부러 얼굴로 가져오는 설정을 사용하게 됐죠.”

사실 오정세가 준비한 ‘민천상’의 준비과정은 짧은 인터뷰 기사에 다 적기가 힘들 정도로 치밀하고 꼼꼼했다. 심지어 관객들이 미처 알아보기 힘든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도 오정세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예를 들자면 교통사고로 안면마비가 온 후 눈을 깜박이게 된 기타노 다케시의 독특한 윙크를 슬며시 재현한다거나 하는 부분이다. 이 모든 디테일을 알아챌 관객은 아마도 없었겠지만, 오정세는 ‘민천상’을 연기하기 위해 이 모든 디테일이 필요했다.

“평소 제가 머리 속에 그리던 인물 들 중 ‘민천상’ 같은 느낌의 악역 캐릭터가 있었는데, 사실 이런 캐릭터는 영화를 잘 만나지 않으면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민천상’ 같은 캐릭터가 나올 수는 없잖아요. 마침 ‘조작된 도시’ 시나리오 자체가 만화적인 느낌이 강한 시나리오였고, 이 영화라면 내가 ‘민천상’ 같은 느낌의 악역을 더욱 풍성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죠.”

영화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제공 = 프레인TPC


오정세는 사실 무명시절부터 동료배우들 사이에서도 매우 소문난 디테일의 화신이었다. 한 배우와 특정 장면을 연기한다고 할 때 보통의 배우들이 한 두 가지의 상황을 설정해서 연습한다면, 오정세는 기본적으로 3~4개 이상의 전혀 다른 상황과 감정을 설정해 리허설을 통해 현장에 최적화된 상황과 감정을 꺼낸다. 아무도 그 고생을 다 알아보고 이해해주지는 않아도 이것이 바로 오정세가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인 것이다.

“현장에 하나의 감정만 가져가게 되면 제가 스스로 당황을 하게 되요. 그래서 항상 여러 상황을 준비하고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두죠. 사실 제일 기분 좋은 것은 제가 A부터 C까지 세 가지 감정을 준비해갔는데, 막상 현장에서 연기를 해보니 F 정도의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이 나오는 것이에요. 그것이 제 최고의 연기죠.”



“인생 최고의 연기라고 하면 아마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강동원씨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일 거에요. 아마 자료화면도 없을 거고, 이 장면에 제가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는 분도 없을 거에요. 전 그냥 강동원씨의 같은 방 죄수 중 한 명이었거든요. 강동원씨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사실 죄수들의 연기 같은 것은 병풍에 불과하거든요. 사형당하는 강동원이 중요하지. 근데 그 장면에서 벽을 보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막 눈물이 터져나오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눈물을 잘 흘리는 배우도 아닌데 감정이 주체가 안 될 정도로 그 상황에 몰입이 된 거에요. 근데 그 장면은 영화에 조금도 보이지 않죠. 제작진도 제가 울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에요. 그냥 저 혼자만 아는 감정이지만, 그것이 최고의 연기였던 것 같아요.”

오정세가 선보이는 코미디는 가끔 충무로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인 리듬감을 자랑한다. 솔직하게 미남이라고 보기 힘든 외모지만 한류 톱스타로 등장해 행동만큼은 ‘욘사마’ 배용준을 능가하는 톱스타의 자존심을 보여준 ‘남자사용설명서’ 같은 영화를 보면 오정세라는 배우가 지닌 포텐셜이 어느 정도인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시영이나 하지원, 류현경처럼 오정세와 같이 연기를 한 배우들과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최고의 파트너는 바로 오정세였노라고 말이다.

“제가 현장에서 돌발적으로 어떤 상황을 생각해서 연기하면 상대 배우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친한 사람들이랑 연기를 하면 그런 돌발행동을 받아주거나 이해해줄 것 같아 조금은 편하죠. 그래서 사전에 미리 호흡을 많이 맞춰보려고 노력해요. ‘남자사용설명서’는 배우 오정세에게는 엄청난 기회를 준 작품이었죠. 전 스태프들보다도 몇 배를 고민하며 최선을 다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와서 제가 그 영화를 다시 봐도 ‘난 최선을 다했어’라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영화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제공 = 프레인TPC


오정세는 아직 ‘남자사용설명서’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처럼 한류 최고 스타 정도의 인기는 아니지만,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개성 넘치는 배역을 연기하며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런 오정세가 있던 것은 운 좋게 한두 작품이 잘 되서 생겨난 결과가 아니다. 언제나 밑바닥에 있는 것처럼 자신을 몰아세우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오정세의 열정과 노력이 지금의 오정세를 만들어낸 힘이다.

“배우가 되고 싶어 연영과를 가려고 했지만 다 떨어지고 그래도 연영하고 조금은 관련이 있을까 싶어 지방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을 했어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무대 단편영화를 하며 배역을 따내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역할을 따고 싶어 노력하던 제 모습이 지금의 오정세를 만든 것 같아요.”

“‘살인의 추억’ 오디션을 봤던 일은 제 인생 최고로 부끄러운 일이에요. ‘살인의 추억’이 당시 무슨 작품인지는 몰랐지만 제목만 들어도 너무나 출연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작진에게 배역 중 ‘바보’ 캐릭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오디션에서 심형래식 바보 연기를 준비해서 보여줬죠. 나중에 영화가 개봉하고 영화를 보는데 그 바보가 심형래식 바보가 아니라 ‘백광호’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내가 대체 뭘 한거냐 하며 눈을 가렸어요. 지금 와서 보면 그런 부끄러운 시간들이 저에게는 다 절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었던 것이죠. 앞으로도 그 마음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해요. ‘아버지’라는 영화에서 ‘손님2’라는 역할로 처음 연기를 하게 됐을 때나 ‘조작된 도시’에서 ‘민천상’을 연기할 때나 표면적으로는 다르겠지만, 제 안에서는 모두 다 같아요. 작든 크든 어떤 배역이든 다 오정세가 연기하는 소중한 배역이에요.”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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