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월, 밀양 주민 이치우씨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면서 분신자살했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와 북경남 변전소를 잇는 765㎸의 고압 송전선이 밀양을 지나는 것을 결사반대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후 송전탑 문제는 빠르게 정치화했다. 같은 해 9월에는 국회 현안보고가 이뤄졌고 송전탑 건설이 중단됐다. 특히 옛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녹색당과 민주노총, 반핵단체 등이 반대집회에 참가하면서 갈등이 더 커졌다. 주민들이 외부단체의 개입 자제를 호소해야 했을 정도다.
이 같은 밀양 송전탑 사태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얼마나 될까.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한국행정학회의 2014년 ‘한국형 정치갈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밀양 송전탑 건의 경우 정치화 이전인 2000년 1월부터 2012년 1월까지는 사회적 비용이 3,700만원에 불과했지만 정치화 이후인 2010년 6월부터 2013년 12월에는 약 100억원으로 무려 270배나 급등했다. 여기에는 경찰 투입비용과 참여자의 생산(임금) 손실, 재판비용, 과도한 보상비용과 갈등 후유증 등이 포함됐다.
다른 건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최종 무산된 동남권 신공항은 정치화 이전(2005년 10월~2007년 3월) 3,200만원 수준이었던 사회경제 비용이 정치화 이후(2010년 6월~2013년 12월) 36억4,200만원(113배)으로 뛰었다. 지난해 무산 전까지의 기간을 더하면 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제주해군기지도 약 1억원에서 378억원으로 급등했다. 권력 앞에 정치권이 사분오열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밀양 송전탑과 동남권 신공항 등은 정치권이 합리적인 문제 해결과 통합의 길 대신 당파와 정략에 따라 사회갈등을 어떻게 확산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입김에 갈등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정부의 조정기능도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사회갈등 발생→정치권 개입→사회경제적 비용증가 및 국익 감소’라는 악순환의 고리만 생겼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정략을 떠나서 가치중립적이거나 국익을 위한 일에는 협력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우리가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동력은 정보기술(IT)과 벤처였는데 이런 식의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국회가 많은 도움이 안 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은 실제 국가 차원의 이익보다는 표심만을 생각한 무리한 행보로 논란을 키워왔다. 구조조정만 해도 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가동중단에 개입하는 한편 금호타이어 매각의 경우 투자자국가간소송제도(ISD)에 따른 소송 가능성에도 대놓고 해외매각을 반대했다. 해당 기업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공장 유치전도 수두룩하다. 전라북도 의회는 삼성의 새만금 투자 철회에 대해 “2011년 투자계획 당시의 진상을 밝히라”며 수시로 신규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2014년 광주광역시는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를 내세웠고 수소차 및 부품생산 주도권을 두고도 광주와 울산·충남이 유치전을 벌였다.
반면 지역 표심이 걸린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무조건 좌절시키면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동부팜한농은 2012년 말 경기도 화성시 화옹간척지에 15만㎡ 규모의 첨단 유리온실단지를 짓고 연간 100억원 규모의 토마토를 수출하겠다고 밝혔지만 농민단체와 정치권의 개입에 이를 포기했다. LG CNS도 지난해 새만금에 ‘스마트팜 단지’ 조성을 추진했다가 철회했다. 현재는 국내 대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의 농업을 영위하려면 농업영향평가서와 상생협력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법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업경쟁력과 수출산업으로의 변신 가능성을 따져보면 정치권이 국가와 국민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각종 비리와 갑질로 갈등을 확대하고 사회적 비용을 늘리는 경우도 끊이지 않는다. 2015년 있었던 ‘철도비리’ 사건을 비롯해 국회의원의 공기업과 금융사 인사개입, 자녀 취업 특혜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결과는 수치로 드러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집계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1997년 30위에 올랐던 우리나라는 2008년 31위, 2013년 22위, 2016년 다시 29위로 내려앉았다. 20년 가까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셈이다. 국민소득도 10년째 2만달러대에서 머무르고 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국회가 개혁작업을 미루고 통합과 대화 대신 갈등만 확산시키다 보니 나온 결과”라며 “이번에도 정치권의 혁신이 없으면 선진국 진입은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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